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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여행기

지리산종주, 강한 중독성이 있더라

두 여자의 지리산 종주 ④

지리산 종주 넷째 날, 세벽 3시 눈이 떠졌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 전에는 더 많이 쏟아진 것 같았다. 과연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출발할 때 천왕봉 일출을 볼 생각이 없었는데, 산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천왕봉 일출도 보러 가지요?" 하고 물어보는 바람에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다.

야간 산행 계획이 없으니 랜턴은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냥 왔는데 큰일이다. 친구가 랜턴을 준비해 왔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정말 산에 올 때는 예측하지 못한 위험이나변화되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꼭 맞았다.


몸을 풀기 위해 따뜻한 스프를 먹고 4시쯤 천왕봉을 향해 출발했다. 랜턴이 없으니 앞도 잘 안 보이고, 내가 발을 맞게 딛고 있는지 불안해 주춤거리게 되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다행히 어제 점심 때부터 길동무가 되었던 아저씨도 랜턴이 있어 세 사람이 랜턴 두 개를 비추며 함께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내 불찰이 크다. 


우리는 쉬지 않고 올랐다. 조금씩 조금씩 앞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천황봉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밝아오면서 나중에는 렌텐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천왕봉 날씨는 겨울이었다. 옷은 이미 젖었고 비옷을 꺼내 입어도 젖은 옷 때문에 추웠다.

구름에 가린 해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다

해는 뜨지 않았다. 아니 떴지만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천왕봉 일출까지 볼 수 있었다면 정말 완벽한 종주가 되었을텐데...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래도 노고운해도 보고, 보름달 뜬 벽소명월도 보지 않았던가 이것 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줄을 서 천왕봉 기념 사진을 찍었다.


천왕봉에서는 각자 하산 코스가 달라  여러 길동무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우리는 중산리로 하산 하였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서울팀은 백무동으로 길을 잡았다. 그 동안에 정이 든 걸까? 그 짦은 시간에 말이다. 왠지 모를 서운한 마음이 생겼다.
 
빗방울이 굵어져 서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내려가는 길에 자연스레 천왕봉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게 되었다. 오르는 사람들은 내려가는 우리를 부러워하고, 우리는 약간의 으슥되는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하였다. 지리산을 떠나야하는 서운함이 컸기 때문이다.

중산리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고 바위가 많다. 비까지 내려 굉장히 미끄러웠다. 거의 쉬지 않고 걸어 로타리 산장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밥을 먹고 보통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 대신 로타리산장 화장실 앞을 지나 이어지는 샛길을 이용해 내려왔다. 한 시간 반 정도 내려가 도로가 나오면 로타리 산장 위쪽 법계사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매표소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로길은 지겹고 재미가 없는 편인데 약간 성의 표시만 하면  버스를 탈 수 있어 좋았다.

드디어 매표소에 도착!! 그 감격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전달 할 수 있을까?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스스로 얼마나 뿌듯하고 대견스러웠는지.... 어떤 어려운 시련도, 고난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리산 종주를 자축하다

지리산 종주를 자축하기 위해 축하주를 먹었다. 동동주와 파전, 도토리무침~완전 꿀 맛이었다.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한채 마산으로 출발 했다. 진주에서 이틀을 우리와 함께 했던 길동무 아저씨와 헤어지는데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지리산을 함께 걸으며 아이 교육에 대해서도 가족에 대해서도 연애사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했는데 헤어지려니 지리산을 내려오던 것 만큼이나 서운하였다.


지리산 종주! 짦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중한 추억을 가슴 가득 담은 뜻 깊은 시간 이었다. 몸과 정신이 깨어남을 느끼고, 다시 한 번 자연의 경의로움과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도 있었다. 어느 여행보다도 마음에 큰 재산을 얻은 기분이다.

나름대로 지리산 케이블카를 반대 운동에도 참여할 수 있어 뿌듯함이 곱배기로 채워진다. 지리산은 중독성이 있다.  벌써부터 내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