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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세상.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말 대안교육을 한다는 대부분의 사

람들은 많이 들은 말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하나 구입해 읽어야지 생각하고는 책을 구입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서야 이렇게 읽게 되다니...지금에서라도 읽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많은 대안학교들은 시골이든 산이든 자연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물론 아닌 곳도 있지만 좀 유명(?)하다 싶은 곳은 대부분이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뉴욕 주에 있는 "프리스쿨"에서 삼십년 가까이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이 곳은 특히 흑인이 많이 살고 있는 일명 할렘가에 위치하고 있는 학교다.

"인종이나 계급에 대한 편견이 아예 없는 세대를 키워 낼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위해 지나치게 물질에 의존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있고, 전쟁의 필요성을 믿지 않는 세대를 키워 낼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사회가 교육을, 순수하게 배움 그 자체가 목적인 배움을 북돋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또 아이들이 충분히 제대로 성장하도록 돕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어떻겠는가!" 라는 생각으로 학교가 만들어졌다.

학교가 세워질 때 특이한 점은 '먼저 행동하고 행정적인 승인은 나중에 받자'라며 일단 학교를 만들어 놓고 하나 둘씩 채워갔다는 것이다. 창립자인 조지는 자기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 아이들이 늘어나고 그래서 건물을 사들이고, 허가를 받아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하나의 대안학교가 생기려면 많은 준비기간을 들여 대부분 생기는데 일단 저지르고 본 학교이다.

그리고 또 많은 대안학교와 다른 점은 아이도 부모도 학교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을 골라서 입학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아이들을 조건 없이 받는다. 시험을 쳐야 입학 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금지 하지 않는 학교

"만약 두 아이가 서로간의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치고 받고 싸울 때 그 싸움이 공정하고 또 상대방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히는 게 아니라면 계속하도록 허용했다. 가까이에 어른 한 명이 있으면서 안전한가 확인도 하고, 필요하다면 그 결투가 서로에게 완결한 느낌을 주게 하고 화애에 이르는 길이 되도록 도움을 주기로 했다."

싸움을 가르친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학교의 전체회의 시간이 있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싸움을 하기보다는 학교생활을 순조롭게 해나간다고 한다. "경험의 정치역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투는 과정을 겪으므로 한아이의 도특한 자지 주장 방식이 발전해 가는 것은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 중요한 학습거리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아는 없다

굽은 나무는 절대 바로 자라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는데 굽은 나무도 병이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놀라운 방식으로 불리한 조건 이겨 낼 수 있다고 한다. 비록 평범한 모습이 아니긴 해도 말이다.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 내면의 문제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모든 아이들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이 주어지면 긍정적인 관심을 얻는 방법을 익혀 자신을 치유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치유의 시간을 갖기 위해 자유시간이 많이 주어진다. 자유시간에는 스스로 짜낸 놀이를 하면서 노는 경우가 흔한데, 이는 아이들은 노는 동안 여러 수준에서 끊임없이 배운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 비례, 언어의 힘, 그리고 자기 자신이나 서로에 관해서 알아가면서 단단한 유대관계가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제 행동은 점차 없어지는 것이다.

공교육기관에서는 많은 규칙와 제한이 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생긴 분노를 억압하게 만든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는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릴 수 가 없게 되어 분노와 함께 지하로 숨어 들어 시한폭탄이 되 버리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의 규칙이나 벌칙이 아니라, 그들이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하는 일이다. 그 대가란 벌을 받거나 어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정을 잃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상실하고 자기만족을 손상당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학생들에게 맞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치유의 학교-현명한 사람은 역설속에서 진리를 본다.

이는 자신의 실수로 부터 배우는 것이라 본다. 그것은 가장 최선의 배움이 이루어지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세니카 인디언의 습관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은 나쁜 짓을 했다고 벌을 받지 않는데, 왜냐면 그런한 행동에는 어떤 교훈이 숨어 있기 때문이리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삶이란 일련의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하나하나는 완전히 알게 될 때까지 되풀되게 되어 있다"

아이가 잘못했다고 아무리 야단을 쳐 보았자 어른 힘만 빠지는 꼴이다. 아이 스스로 알 수 있게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공동체 속에서 어떤 한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모든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다른사람이 저지르는 잘못으로부터 모두가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두려움은 부모가 자식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 올바르게 사고 하지 못하게 하고 많은 사람들이 학교가 제멋대로의 표준에 근거해서 학습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할 때 의문을 던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두려움에 질린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이처럼 두려움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프리스쿨에서는 배움을 즐겁고 자연스런 과정으로 여긴다. 두려움을 다스리는 헤독제는 신뢰라고 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신이 부여한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배움이라 부르는 것은 그 잠재능력의 자연스런 전개라고 프리스쿨은 본다. 에듀게이션(education)은 '이끌어 낸다'는 뜻인 라틴어에듀케어(educare)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렇듯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생활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원하는게 무엇인지, 행복하려면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가게 된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눈이 씹는 껌이다.
 
"텔레비전은 중독성이 있다. 여기서 그 질은 상관없다. 지나친 텔레비전 시청은 어린아이들의 정신 발달에 특히 해롭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정신적 심상을 창조하는 능력을 텔레비전이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심상 형성은 지성과 팡조 과정을 이루는 기초적 건축재료인데, 아이들은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개 이 이미지 형성 과정에 들어간다. 한편 텔레비전은 아이들에게 미리 만들어진 이미지를 제공한다.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게 될 때 이 활기찬 정신 기능을 수행하는 두되영역이 게을러지고 발육불능에 으르게 되기까지 한다"
텔레비젼은 어린이의 가치관, 태도, 행동을 형성해 나가는데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텔레비전은 현대의 저주라 표현한다. 텔레비전이 아닌 그림이 없는 동화책을 읽어주며 이미지를 형성해가고, 책 속 등장 인물들의 삶을 통해 배움으로써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르침과 배움의 경계 허물기

책에는 아이들과 만나면서 종교, 인종과 계급, 여성과 남성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사례들이 실려있다.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미술수업을 할 때에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계속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 가르침의 과정은 미시(프리스쿨교사)가 그림을 그리는 일을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가로부터 시작된다. 미시는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하고 이런 그녀의 즐거움은 재빨리 확산되어 교실을 가득 채운다."

모든 가르침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 내가 그렇게 사는 것, 행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되는 대목이다. 참으로 쉽지만 어려운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연차가 쌓일수록 이런 생각과 책임감이 많이 든다. 부지런해져야겠다는 생각도 말이다.

책에서 교사가 부모가 두려움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표정만으로도 억양만으로도 전달 된다고 한다. 두려움이 없는 교사. 나의 교사상에 또 하나 늘어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