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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여행기

비오는 날 걷는 무학산 둘레길의 매력

지리산 종주를 함께 했던 친구와 무학산 둘레길을 걷기로 하였습니다. 약속한 당일 무심히도 하늘에서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조금 오면 갈텐데 많이도 내리더군요. 갈까말까 망설이다 비 맞으며 산행하는 것도 재미난, 좋은 경험이 될 거란 생각에 친구와 함께 무학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유명한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이 폭풍이 치는 날 어린 조카를 데리고 바닷가에 나가 장엄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해주었던 경험을 쓴<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책을 생각하며 둘레길 걷기에 나섰지요.


고민하다 시간도 늦어졌는데 비옷도 없어 정신 없이 등산복 매장에 들러 비옷을 구입했습니다. 비가 와준 덕분에 이번 기회에 비옷도 구입하게 되었네요. 그렇게 친구집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유뷰초밥을 준비하고, 간식거리를 챙겨 밤밭고개로 향했습니다. (늦어도 할 건 다 합니다^^)

10시로 출발 예정 시간을 잡았었는데 1시간 30분이나 지체되었습니다. 입구에서 비옷을 챙겨입고,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출발!! 땅이 젖어 미끄럽긴했지만 걸을만했습니다. 비옷입고, 우산 쓰고 걷는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요. 마냥 즐거워 산에 웃음 소리가 넘쳐났습니다. 

출발하고 한 시간 가량은 비가 제법 내렸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없더군요. 산에 친구와 나 둘만 있다고 생각하니 꼭 무학산의 주인공들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 좀 헤매다 보니 시간이 더 늦어지더군요. 만날제에 도착에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비는 오고 엉덩이 붙이고 앉을 곳이 없더군요. 눈에 띈 곳이 공연을 하는 무대 위 였습니다. 그 곳 말고는 비를 피할 곳이 없었거든요. 누가 봤다면 정말 처량한 공연으로 봤을 겁니다. 움직이지 않으니 춥기도 하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수 없어 쪼그리고 앉아 싸온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재밌더군요. 지금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옵니다.




무학산 둘레길이 모든 길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 아~ 이쁘다"  말이 나올 만큼 이쁜 길도 많았습니다. 비가 내려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 나무에 떨어지는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그리고 촉촉함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지 모릅니다. 또 산을 걸으며 바다를 볼 수 있으니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길도 표지판이나 길도 잘 정비해 두었더군요.


그런데 무학산 둘레길에는 무덤이 참 많았습니다. 꼭 '무학산 공동묘지 순방'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비도 내리는데 무덤가를 지날 때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여자 둘이 참 겁도 없습니다.

▲ 사진이 좀 흐릿합니다만 숲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것을
직접 본 것은 처음입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지요.

 
청설모는 산에 가면 자주 보는데, 이날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사실 딱따구리가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분명 부리로 나무를 열심히 쪼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딱따구리라고 생각했지요.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도 않고, 신기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깃털색이 참 예뻤습니다.

사진이 좀 흐릿합니다만 숲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것을 직접 본 것은 처음입니다. 레이첼 카슨의 말처럼 사람들이 찾지 않는 비오는 숲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지요.

친구와 이야기하며 느릿느릿 걷다보니 어느새 해가 졌습니다. 도착 할 때가 다 되긴 했었지만 큰일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마산시내의 야경이 보이는 겁니다. 야경을 보는 순간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늦게 출발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야경을 보았습니다. 



물론 마산 야경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뭐라 설명하지 못할 또 다른 기쁨이었습니다. 꼭 둘레길 걷기의 마지막에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보통 4~5시간이면 다 걷는다는데 저희는 7시간 걸려 무학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무학산을 생각하면 이 날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마음 속 추억 선물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 10점
레이첼 카슨 지음, 표정훈 옮김/에코리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