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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아이가 되어 버린 길 잃은 할머니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약속이 있어 합성동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합성동은 집과 걸어서 5분거리에 있거든요) 연세가 아주 많아 보이시는 할머니가 길을 물으시더군요. 

"저기 처자야, 국민핵교 갈라몬 어디로 가야되노?"
"국민학교요? 양덕 말씀하시죠?"
"허,허(그래)"
"여기로 쭉~내려 가시면요 신호등이 나오거든요 신호등 건너서 오른쪽으로 쭉 가시면 국민학교(초등학교)나와요"
"어? 여기로? 내는 모르겠네요 우야노 우야노"
"할머니 모르시겠어요?"
"우야노 내는 모르겠는데, 잠깐 나왔는데 내가 길을 잊자무따 우짜면 좋노 명숙이가 내 찾을낀데 "
"그러면 제가 같이 가드릴게요 걱정마세요 할머니"



그래서 모셔다 드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할머니가 무척 불안해 보이시더라구요. 안심 시켜 드릴려고 전화 번호를 물었더니 모르신다고 하셨습니다. 학교앞 문방점이 집이시라고 거기만 가면 찾을 수 있으시다하셨어요. 제가 양덕 초등학교를 졸업해서 잘 알고 있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를 부축해 걷는데 허리가 많이 굽으셔서 그런지 걷는것도 많이 힘들어 보이셨어요. 그래서 할머니께 물었더니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더라구요. 10분은 걸어야 하는데 안되겠다 싶어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를 타니 금방 도착했지요.

할머니 댁이 제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다녔던 문구점이었습니다. 그 때 그 주인 아줌마가 딸이더라구요. 마음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할머님이 가게로 들어가 "명숙아 명숙아" 부르시는데 목소리에 힘주어 부르셔도 힘이 없으셔서 큰소리가 나지 않으셨어요. 주인 아줌마인 딸은 할머니를 찾으시느라 잠시 가게를 비워둔것 같았습니다.
 
할머님이 아마 운동장에 찾으러 가셨을거라고 하시더라구요. 운동장 한바퀴돌고 잠깐 손자 볼려고 나왔다가 길을 잃으셨다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운동장에 가보았지요. 제가 알고 있던 그 얼굴이 맞았어요. 할머니를 찾고 계시던 아줌마에게 할머니 가게에 계시다고 길을 잃으셔서 모시고 왔다고 말씁드렸지요.

깜짝 놀라시며 뛰어가 할머니를 확인하시고는 고맙다고 수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님도 처자가 없었으면 어쩔뻔 했냐고 하시는데 많이 부끄럽더라구요. 택시비 드린다고 팔을 잡으시는데 괜찮다고 할머니께 가본다고 인사드리고 얼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런 인사를 받을 만큼 제가 많이 도와 드린 것도 없는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저는 다만 아이가 되어버린 같은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드시면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이로 변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할머님도 나와 같은 때가 있었을 테고 그때는 그렇지 않았겠지요. 그 시대의 강인한 어머니로 아이들을 키우셨겠죠.

다시 약속 장소로 가는데 우리 보모님도 생각났더라구요. 부모님께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오히려 할머님 덕분에 속물인 제가 착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 같아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칭찬받으려고, 자랑하려고 쓴 글이냐고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마음 보다는 좋은 일 하고 난 후의 뿌듯한 마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글을 씁니다. 잠시나마 착한마음을 품게 해주신 할머니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