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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이야기

마음에 안 드는 신랑은 버려?

"내같으면 그런 신랑 버리고 다른 신랑 만나겠다"

무슨말이냐구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일곱살 여자아이가 한 말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고 까막 까치가 말할 적에, 어떤 색시가 시집을 갑니다. 연지 곤지도 찍고 쪽두리에 활옷까지 입고 신랑을 맞이 하는데 세상에나, 신랑이 엄청 조그만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도토리만 하더랍니다. 그래도 신랑이니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작아도 같이 살아야지요.

이 대목을 들려주는데 "내 같으면 그런 신랑 버리고 다른 신랑 만나겠다" 하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 들려 주다 빵~터졌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때 처럼 얼굴도 모르고 시집가던 것은 머나 먼 옛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시집, 장가를 가려면 결혼하고 싶을 만큼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겠지요. 억지로 참고 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키 작다고 '루저'로 볼 것도 아니고, 또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마음에 안든다고 쉽게 버리는 것이 아닌,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옛 선조들의 지혜가 옛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냐구요?

그래서 색시와 도토리 신랑은 혼인을 하고 첫날 밤을 보냅니다. 음식상을 받아 놓고 먹는데 마침 밤 한 소쿠리가 들어와 색시는 밤을 다 까먹고 밤껍질을 물그릇에 담아 놓습니다.


그런데 밤을 다 까먹고 나니 신랑이 보이지 않습니다. 허리를 굽혀 방바닥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없더랍니다. 신랑을 잃어버렸다고 큰 걱정을 하고 있는데 물그릇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에 가만히 들어보니 "에야디야 에야디야 노 저어라 에야디야" 청승 맞은 뱃노래가 들립니다. 들여다보니 도토리 신랑이 밤 껍데기를 배삼아 타고, 성냥깨비로 조를 저으며 놀고 있더랍니다.

색시는 화도 내지 않고 신랑을 젓가락으로 꺼내어 삿자리 위에 엊어 놓습니다. 이제 잠을 자려고 하는데 또 삿자리에서 "영차 영차"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이번에는 삿자리 위에서 벼룩하고 씨름을 하고 있더래요. 이번에도 색시는 화내지 않고 신랑을 젓가락으로 집어내어 이부자리에 곱게 뉘어 주고 잠이 듭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또 신랑이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그릇이란 그릇은 다 뒤져 보고, 삿자리란 삿자리는 다 뒤져봐도 없습니다.

우리 서방님 잃어 버렸다고 한참을 울고 있는데 이불자락 밑이서 "에취 에취" 소리가 들립니다. 들여다 보니 색시가 흘린 눈물 때문에 옷이 젓어 감기가 든게지요. 그래서 색시가 젓자락으로 신랑을 들어 내어 옷도 갈아 입히고, 조각 이불을 덮어 줍니다.

그 뒤로 색시는 한 시도 신랑에게 눈을 때지 않고, 신랑이 가면 저도 가고, 신랑이 오면 저도 오고, 혹시나 잃어 버릴까봐 장에 갈 때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가고 빨래 하러 갈 때도 바구니 안에 넣고 갑니다. 그래서 잃어버리는 일 없이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서정오 선생님의 옛날이야기 입니다.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자주 들려줍니다. 옛 이야기에는 우리 선조들의 삶과 철학이 고스란히 들어 있기에 이야기 속에 배움이 있고, 그것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