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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이야기

어른도 아이에게 잘못하면 사과해야 한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가끔 당혹스러운 일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쥐 구멍 있으면 숨고 싶을 때, 너무나 충격적이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때, 어의가 없어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날 때, 머리 끝까지 화가 날 때가 종종 있지요.

학기 초 겪었던 일입니다. 수영장 가는 날이 었습니다. 수업하다 보니 차 타러 가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겁니다. 아이들에게 "수영가방 챙겨라" 그러고는 부랴부랴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저희 교실은 2층)  세 반이 수영장을 가는데 이 날 따라 세 반들이 한꺼 번에 현관으로 몰려 나온겁니다.

현관 입구에 아이들이 바글바글 정신이 없었습니다. 3반이 모두 섞여 "야! 비켜라" "밀지마라" 다투는 소리가 들리고 안되겠다 싶어 "우리반은 얼른 선생님따라 와~" 하고는 먼저 유치원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유치원 마당도 왁자지껄한 건 마찬가지 였죠.

저희 유치원 앞은 좁은 길이라 유치원 차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30m정도는 걸어 큰 길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차 타러 가자"를 외치고 이동하였습니다. 얼른 복잡한 공간을 빠져나오고 싶었던거죠. 차를 타면 아이들이 따라 올테고 인원도 확인되겠지 싶었습니다. 

                (유치원 앞 철길을 따라 바깥놀이가는 모습입니다. 기차가 다니지 않아 아이들이 기차가 됩니다.)

일주일에 한번 씩 수영장에 가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문제 없이 모두 따라 왔습니다. 그런데 일은 그 때 벌어 졌습니다. 한 아이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선생님 나 신발 하나가 없어요"라며 말을 하는데 순간 발을 쳐다 보니 한 쪽은 신발을 신고 한 쪽은 맨발인 겁니다. 여름이라 양발도 신지 않고 있었습니다. 맨발로 그 길을 걸어 왔던 거지요.

그런데 그 순간 그 아이의 친할아버지가 지나가다 그 광경을 본 겁니다.(머피이 법칙 아시죠?) 그 아이 집이 유치원과 근처거든요. 뜨악! 저는 순간 얼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이 되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저 에게는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셨습니다. 서운한 일이 있으시면 저에게 불같이 화를 내시던 할아버지셨거든요. '실수 안해야지' 하고 조심하는데도, 자기 물건을 잘 못챙기는 아이가 숟가락도 잃어버리고, 실내화도 잃어버리는 바람에 할아버지께 야단 맞기 일수였습니다.

"바보 같은 놈!" 하시며 할아버지가 엄청 화나신 얼굴로 그냥 획~ 지나가 버리셨습니다. 그 소리에 시끌벅적하던 아이들도 일제히 조용해 졌습니다. 순간 그 아이가 어찌나 밉던지요. 맨날 자기 물건을 제대로 못챙겨 싫은 소리 듣게 하더니 또 일이 벌어진겁니다.

아이들을 모두 차에 태우고 "잠시 기다려" 그러곤, 아이를 안고 뛰었습니다. 현관으로 가보니 신발장 위에  신발이 있더군요. 자기 신발칸에 제대로 넣어두지 않아 누가 주워서 신발장 위에 올려 두었던 겁니다. 

신발을 찾아 차로 돌아와 수영장으로 출발하는데 길 모퉁이에서 할아버지가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걱정이 되셔서 가지 못하시고 보고 계셨던 거죠. 할아버지께 전화 드려 신"발 찾았으니 걱정 마시라"고, "죄송하다" 말씀드렸습니다.

수영장으로 가는 차안에서 내가 한심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정말 힘들 때면 생각나는 "내가 이러고 살아야 되나" 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신발이 없어 졌다 진작에 말했으면 찾아 줬을 텐데 그걸 말로 못하나?' 생각, '아이고 내팔자야, 할머니, 큰엄마한테는 또 뭐라고 하나' 라며 그 아이 집에 전화할 걱정부터 들더군요.

순간 아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아이의 표정도 말이 아니더군요. 신발이 없어져 난감했을텐데 선생님은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 말 못하다 간신히 말했는데 하필 할아버지가 눈에 띄어 친구들이 다 듣는데 "바보같은 놈"이라는 소리도 들었지, 선생님은 울지, 아이 입장에서 돌이켜보니 제가 생각이 짧았다 싶었습니다.

잘못을 하였을 때는 어른이라도 아이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아이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요? 저는 아이의 마음도 읽지 못하고 제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서두르지 않고 준비 하였더라면, 아이들을 차근차근 챙겨 차를 타러 갔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겠지요. 저라도 아이를 보듬어 안아 줬어야 하는데 선생으로써 참 못났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사과를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빨리 가자 그러니까 신발이 없다는 말을 못한 거지? 선생님이 미안해" 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곤 할아버지도 속상해서 하신 말일 거라고 아이를 다독여준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이라도 아이에게 잘못을 하였을 때는 사과를 해야 합니다. 부모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말입니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아이에게 잘못한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모르는 척 넘어 가는 것은 어른으로써 옳지 못한 행동이겠지요.

그 일을 계기로 저도 많은 것을 깨달았고 아이도 자기 물건을 잘 챙겨야 겠다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사도 아이도 모두 성장하는 경험이 되었지요. 하지만 아직도 할아버지는 호랑이할아버지시니 조금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