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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이야기

일곱살, 유치원 다닌 거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새학기가 시작되고 벌써 2주가 지났습니다. 정말 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후딱 지나가네요. 이제 우리 아이들도 친구들과 제법 친해져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놀이를 합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예쁩니다.

 

반을 맡으면 늘 아이들과 하는 미술수업이 있었습니다. '내얼굴 그림액자'인데요. 자신의 얼굴을 두꺼운 도화지에 그려 액자처럼 꾸미고 그것을 교실 한 쪽 벽에 전시 하는겁니다. 일반 미술수업이랑 비슷합니다. 이것을 하려고 하니 조금 더 재미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머리를 모으니 생각이 커졌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으로 재미난 미술수업이 이루어 지다.

 

'내얼굴그림액자'를 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나는 쌍커풀이 있는지 없는지, 점은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어디에 있는지, 안경을 썼는지 안썼는지 머리 모양은 어떤지 등등 관찰한 후에 액자에 얼굴이 가득차게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포스터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중요한 것은 잘그리고 못그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그리고 싶지만 그림을 잘그리는 사람도 있고, 못그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때 내 정성을 담아 그림을 그렸느냐 대충 낙서했느냐에 따라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담아서 정성껏 그림을 그리면 그건 못그렸어도 잘 그린 그림이 돼! 하지만 내 마음이 없고 대충 그린 그림은 못 그린 그림이야. 너희들이 화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려봐. 그럼 아주 정성스럽게 내마음을 담아 그릴 수 있을거야"

 

"화가요?"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화가야~알았지? 화가님들 그림을 그려주세요~여기 벽에 전시를 할테니까요~"

 

"전시요? 그럼 여기가 미술관이 되는 거네요? 우리 미술관해요!"

 

"그렇게 되는 거네~바다반 미술관! 정말 멋지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유치원에서 미술관을 열기로 하였습니다. 미술관은 이름이 있어야 사람들이 알 수 있다고 하니 여러 아이들이 의견을 내놓았지요. 두가지로 좁혀 투표도 하였습니다. 당첨은 '바다열매 미술관'으로 정해졌습니다. 저희반은 바다반, 같은 연령의 열매반도 같이 하였기 때문에 바다열매 미술관입니다.

 

아이들의 혼이 담긴 작업들.

 

이 작업은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하루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다시 와서 그림을 달라며 가져가서는 다시 고치고 정말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리더군요. 아이들의 혼이 담긴 그림 같았습니다. 이 그림은 잘 그려도 너~무 잘 그린 그림인거죠.

 

다음 날에는 또 회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미술관에는 보통 입장료도 있고 홍보도 해야 사람들이 알고 온다고 하니 포스터를 만들자고 합니다. 전단지는 유치원 동생들 선생님들께 다 나눠주려면 너무 많다나요? 그리고 자기들이 돌아다니며 홍보하면 된다고 전단지는 필요 없답니다.ㅋㅋ  

 

입장료도 정했습니다. 어린이는 돈이 없으니까 공짜, 어른들은 500원으로 말입니다. 너무 비싸면 손님들이 구경 안 올 수 있다해도 어른들이 500원도 없을리가 없답니다. 천원으로 하자는걸 겨우 말려 500원으로 낙찰(?) 되었습니다. ㅋ

 

번 돈으로는 치열한 의논을 벌일세도 없이 하나 같은 마음으로 '유기농과자 사먹기'로 정해졌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하나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삼삼오오 모여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전시관 이름, 장소, 가격까지 써넣고 자기들이 한 포스터를 자기들이 잘보이는 곳에 붙히게 했습니다. 유치원 곳곳에 붙히고 점심시간에 돌아 다니며 홍보도 하기로 했습니다.

 

미술관이 열리다!

 

드디어 점심시간! 보통은 한시간은 걸려야 모든 아이들이 다 먹는데 그날은 20분만에 모든 아이들이 밥을 다 먹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밥을 다 먹은 동시에 양치까지 끝내고는 유치원 곳곳을 누비며 홍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생들의 손을 잡고 와서 누가 그린 그림인지 설명을 해주고, 또 다른반 선생님들께 꼭 500원 들고 오라며 약속을 받고 와서는 저에게 자랑까지 합니다. 급식선생님까지 찾아가 오시기로 했다며 말하는 아이들, 그 표정에서는 해야할 것을 해냈다는 뿌듯함과 기대감이 가득한 그야말로 행복이었습니다.

 

 

<위: 급식선생님께 그림을 설명하는 모습, 아래: 선생님들께 급히 쓴 초대장>

 

아이들이 한명씩와서 한마디씩만 해도 35번은 들었을 우리 선생님들, 어디 아이들이 한번만 말했을까요? 한번만 말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어디 아이들 마음이 그럴 수 있어야지요. 선생님들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에 유치원은 흥분의 도가니 였습니다. (선생님들께 따로 초대장까지 만들어 드리는 아이들도 있었답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셨을 텐데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500원씩 들고 선생님들도 미술관에 입장해 주셨습니다. 아이들 그야말로 좋아도 좋아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4500원을 벌었습니다.

 

유치원 다닌 거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날!

 

다음날, 유기농 과자 파티가 열렸습니다. 물론! 4500원으로는 너무 적은 돈이었기에 파티라고 할 수는 없었지요. 조금 더 보태 만원으로 유기농 과자 7봉지를 샀습니다. 더 많이 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넉넉하게 해준다면 또 그 의미가 희석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7봉지의 과자였지만 싸우는 아이 하나 없었습니다. 5명씩 짝을 이루어 먹는데도 더 먹을 거라며 큰 소리 치는 아이 없이 너무나 소중하고 맛있게 과자를 먹었습니다. 우리들의 과자파티는 그랬습니다.

 

"애들아~나 유치워 다닌 거 중에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야"

 

그 날, 아이들의 행복 가득한 목소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입니다. 평범한 미술수업이 이렇게 재미나고 신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을 만들고 누리며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이구나 싶었지요. 저까지 매우 행복했습니다. 

 

행복할 시간도 없는 요즘 시대의 아이들에게 우리가 행복을 느끼고 즐기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대들은 행복하신가요?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