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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세상.

간절한 마음이 통하는 예쁜 동화책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작가는 '강아지 똥'의 저자 故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의 동화를 읽으면 옛 시절의 흙냄새 나는 정겨움이 있고, 마음의 감동이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삶의 철학이 동화 속에 담겨있거든요.

어떻게 동화 속에 그 철학을 담으실 수 있으신지 감탄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요. ‘엄마 까투리’는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엄마의 사랑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동화 한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어찌 소설책도 아닌 작은 동화 한편에 그 사랑을 담을 수 있으신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글은 쉽게 쓰는 것이 가장 잘 쓰는 것이라는데 동화는 쉽게도 쓰고, 짧게도 써야하니 정말 모두 천재인 것 같습니다.

동화작가 중 또 좋아하는 분은 이영득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의 동화를 보면 ‘동화가 예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내용도 예쁘고, 그림도 예쁩니다. 읽으면 더러워졌던 내 마음이 사라지고, 동화처럼 예뻐지는 기분이 들지요.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그런 동화책들입니다.


2010/05/19 - [독서세상.] - 말하는 알, 아이들은 진짜라고 믿어요 !


그 중 얼마 전 새로운 동화책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강마을 아기 너구리’입니다. 엄마는 돌아가시고, 아빠와 둘이 사는 아기 너구리 이야기를 소개해봅니다.


엄마 없는 아기너구리, 아빠를 기다리면서...


너구리네 집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있습니다. 한낮이면 강물이 비취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곳이지요. 아기너구리는 아빠랑 둘이 삽니다.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빠너구리가 강가에 물고기를 잡으러 가실 때면 아기너구리는 늘 혼자 놉니다.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강이며 못이며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놀지요.

그날은 엄마너구리의 제삿날이라 아빠너구리가 일찌감치 배를 띄웠습니다. 아기너구리는 강가에서 동무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파란빛 물총새가 날아오는 걸 발견합니다. 물총새는 고기를 잘 잡는다고 아빠너구리가 엄청 부러워하는 새였지요. 아기너구리는 고기 잡는 걸 구경하려고 물총새를 조심조심 따라 갑니다.

물총새는 강가 모래밭에 내려앉더니 모래를 흩뿌려 바닥을 고르고 부리를 땅에 대고 뭔가를 그립니다. 또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고개를 까딱까딱, 맨 아래엔 발자국도 콕 찍으며 그림을 그립니다. 다 그린 물총새는 그림 둘레를 콩콩 뛰기도 하지요. 그것을 아기너구리는 몰래 지켜 보고 있습니다.

도무지 고기 잡을 생각 따위는 없어 보이던 물총새였습니다. 그때! 잠잠하던 강물에서 고기가 막 튀어 오르는 겁니다. 물총새는 쏜살같이 날아가서 물 위로 슝~ 튀어 로는 고기를 잡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아기너구리는 너무나 놀라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지요.


“와아! 모래밭에 그린 그림이 요술을 부렸나 봐.

맞아. 그래서 물총새가 고기를 잘 잡는 거야.”

이렇게 아기너구리를 생각하다 퍼뜩 좋은 수가 생각났습니다. 물총새의 그림을 배껴 두면 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지요. 이제 그림만 있으면 고기 잡는 건 문제 없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몰총새가 가기만 기다리지요.

그런데 이게 웬걸? 고기를 배불리 먹은 물총새가 부리를 슥 닦더니 그림을 삭삭 지우는 겁니다. 그리곤 버드나무 숲으로 포르르 날아갑니다. 모래밭에는 물총새의 발자국만 남았습니다.

아기너구리는 온종일 물총새를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물총새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물총새의 요술 그림을 그려보지만...

해 질 녁이 다 되어서야 가까스로 물총새를 찾았습니다. 마침 물총새가 그림을 막 끝낸 참이었지요. 아기너구리는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갑니다. 그 때문에 물총새는 깜짝 놀라 달아납니다.

모래밭에 남아 있는 요술 그림을 보며 아기너구리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이제 고기 잡는 건 문제 없다‘ 생각하며 그림을 열심히 따라 그렸지요. 아주 열심히 그렸지만 물고기는 튀어 오르지 않습니다. 어느새 날아와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물총새가 어이없는 말투로 뭐하냐 묻지요.




요술그림을 그렸는데도 물고기가 튀어 오르지 않는다며 엉뚱한 말을 하는 아기너구리에게 핀잔을 주며 물총새는 또 날아갑니다. 아이너구리는 모래밭에 털버덕 주저앉습니다.


어느새 강물도 모래밭도 노을빛에 물듭니다. 아기너구리는 아빠너구리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며 엄마 제사상에 올리고픈 커다란 고기도 그리고, 작고 예쁜 고기도 그리고, 수염이 기다란 고기도 그립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강가 모래밭에 고기 그림이 가득 찼을 때 저 멀리 아빠너구리가 배에서 손을 흔듭니다. 아빠를 만난 아기너구리는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아빠에게 종알종알 늘어놓지요. 아빠너구리는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그 때 “아, 참, 이거 봐라.”면서 아빠너구리가 물이 뚝뚝 흐르는 그물을 가리킵니다. 그물 속에는 고기가 한 가득입니다. 커다란 고기, 작고 예쁜 고기, 수염이 기다란 고기......아기너구리가 그린 고기가 다 있습니다. 아기너구리는 너무 놀라웠습니다.

“오늘은 우리 아들 덕에 고기를 많이 잡았네”

이렇게 아빠너구리와 아기너구리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예쁜 동화지요?

아기너구리와 물총새가 그리던 그 그림은 기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간절함이 담긴 그림,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순간, 그것이 요술그림이 되는 순간이었던 겁니다.

아기너구리는 물총새의 그림을 베끼려했습니다. 그것은 남의 간절함을 베끼려는 것이었기에 통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정말 자신의 것이 나왔을 때, 나만의 간절함이 나왔을 때 통하였던 겁니다.

이 동화를 읽고 나니, 나는 어떤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을 나만의 간절함으로 하고 있는가? 아니 말만하고 간절함은 없지 않는가? 타인을 의식해 잘보이려 궁색하게 꾸미고 있지는 않은가? 라고 말입니다.

아기너구리의 순수한 마음이 부럽기만하네요. 아기너구리와 같은 순수한 마음의 간절함으로 아이들을 만나야겠습니다.




강마을 아기너구리 - 10점
이영득 글, 정유정 그림/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