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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이야기

졸업식, 더 큰 세상으로 아이들을 날려보내며...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 오늘 졸업입니다. 유치원 교사가 된 후 벌써 다섯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언제 일년을 다 살았는지 흘러 버린 시간이 믿어지지가 않네요. 늘 이맘 때면 함께한 아이들을 떠나 보내는대도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헤어짐으로 새로운 만남이 생기지만 지금은 슬픈 마음은 더 큽니다.
<일년 동안 함께한 아이들 입니다.>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졸업을 앞둔 아이들은 스승의 날을 이후로 마냥 들떠 있습니다. 이제는 여덟살 형아들이 되어 동생들에게 물려주고 떠나야 된다고, 매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면 자기들은 매일 유치원에 놀러  올거랍니다. 와서 선생님도 보고 놀고 갈거랍니다.

"선생님 나는요~ 학교랑 YMCA랑 가깝거든요~ 그래서 맨날 선생님 보러 올거예요"
"나는요~ 엄마가 초등학교가면 영어학원 간다했거든요 근데 학원이랑 가까워서 마치고 맨날 YMCA올 거예요"
"그럼 우리 맨날 만나겠네~"
"나도 올거다 맨날 올거다"
"니는 멀어서 맨날 못오거든 어떻게 올건데?"
"택시타고 올거다!"


기발한 생각이지요? 저마다 계획들이 다양합니다. 정말 기특해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직은 잘 알지 못해 이렇게 말하지만 표현하는 마음들이 정말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나는 행복한 교사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줍니다.

이제 몇 일 안 남았으니 아이들에게 잘해줘야지 생각이 들다가도 아이들 행동에 불끈 할 때가 있습니다. 어제는 자유시간이 끝나고 정리를 해야 하는데도 정리할 마음이 없는지 계속 놀이에 열중하더군요. 자유시간의 배움이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마냥 놔둘수는 없지요.

보통 "누구 잘하네~이야 멋지다"라고 칭찬하면 너도 나도 잘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칭찬으로 더욱 힘이 나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칭찬도 통하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바다반! 너무한거 아이가~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선생님 이야기 들어주지도 안하고 이틀만 좀 참아주면 안되겠나?"
"그럼 선생님이 이틀만 참으세요~"


저보다 한 수 위지요? 그말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이틀밖에 안남았는데 아이들이 끝까지 잘해주기만 바라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보았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텃밭에게도 고맙다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초등학교에 가면 이제는 이렇게 신나게 놀 시간도 많이 없을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남은시간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나 잔디밭에 나가자 하더군요. 그래서 어제는 밖에 나가 정말 신나게 놀았습니다. 오는 길에 텃밭에 가서 일년 동안 농사를 짓게 해준 텃밭에게 인사도 하고 말입니다.

한 해를 생각해보면 제가 아이들에게 해 준 것보다 아이들이 더 받은 것이 많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을 통해 배운것이 많으니까요.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제가 생각하는 교육을 펼칠 수가 없었겠지요. 교사로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아이들에게 그리고 믿고 보내주신 부모님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졸업식이 있는 날입니다. 정상수업을 하고 저녁에 일곱살 졸업식을 합니다. 바다반에서의 마지막 날인 겁니다.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시원섭섭 하시죠?"라 하는데 시원한 마음 전혀 안듭니다. 정든 아이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 섭섭한 마음이 더욱 큽니다. 

저는 믿습니다. 어느 덧 성장하여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는 우리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는 마음의 큰 힘이 있다는 것을요. 언제나 아이들의 영원한 팬으로 응원할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저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여도 아이들은 제 마음에 살아 있고 아이들 마음에 제가 살아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인 오늘 아이들과 신나게 보내야 겠습니다.

오늘 또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저의 아이들을 날려보냅니다. 도종환 선생님의 '스승의 기도'를 함께 묵상해 봅니다.

스승의 기도 

날려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듯
저희가 아이들을 사랑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당신께 그러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뜨거운 가슴으로 믿고 따르며
당신께서 저희에게 그러하듯
아이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거짓없이 가르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저희가 있을 수 있듯
저희가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힘차게 나는 날개짓을 가르치고
세상을 올곧게 보는 눈을 갖게 하고
이윽고 그들이 하늘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저희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더더욱 아이들을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