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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세상.

교회에는 없는 예수를 만나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렇다고 맹신도는 아니다. 가족 모두가 교회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아주 당연히 하느님과 예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런데 종종 의문이 생겼다. 왜 교회에 가야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냥도 만날 수 있을텐데...교인이라면 모두가 예수님 처럼 살아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은지 말이다.  

예전에 이현주 목사님의 '신학강의'를 읽고 목사님이 설교로 해주시는 성경 풀이가 아닌 다른 시각으로 성경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신'적인 예수만을 믿고 살던 나에게 사람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 그때 기독교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을 세웠었는데, 이번 김규항의 '예수전'을 읽으며 더욱 깊이 예수를 알 수 있었다.


성경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300년이나 지난 후에 쓰여진 책이다. 로마황제인 콘스탄틴누스가 자신의 권한을 강화시키기 위해 니키아 공회의에서 사람 예수님을 신격화 시킨 것이 성경이란다.

따라서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예수가 살았던 시기의 환경은 성경을 해석하는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지금 시대에 비추어 유리한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시대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문화가 다르기에 예수님의 삶에 대한 해석도 달라 질 수 있는데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들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사람은 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사람은 대개 마음의 귀, 마음의 눈을 닫고 살아간다. 사람이 현명함을 얻지 못하고 진리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아는게 적고 공부가 적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래서다. 예수가 말한 '들을 귀'란 마음의 귀 진리의 방문을 기다리는 밝은 마음이다. 

정말 와닿은 구절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본다고... 지금 일하는 곳만 봐도 그렇다. 고기가 몸에 안좋다기에 채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기의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성경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는게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듯하다.

책에서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를 읽어 주기에 더욱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예수님이 살던 시대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는 힘 없는 존재고 모자라는 인간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

성경에는 "어린아이와 같아라" 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는 어린 아이는 귀하고 하나의 완성된 작은 인간으로  보지만 고대사회에는 '모자란 인간'도 아닌 '인간의 원재료'로 보았다. 말하자면 예수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섬기는 일이 곧 가장 숭고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귀한 인간, 훌륭한 인간의 기준을 되묻는다. 예수는 귀한 인간, 훌륭한 인간이란 우리가 생각하듯 배운게 많고 시화적 업적이나 명성이 높은 인간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활짝 열려 있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그 시대에 나온 혁명가였던 것이다.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끓는 마음'에서 행동을 시작하는 예수는 천대 받고 멸시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까지 한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식탁 교제는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에 속했다. 누구와 먹는가, 어느 자리에 앉는가 따위는 곧 그 사람의 신분과 명예를 표현했다.

예수는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 죄인, 여성, 아이들이 사람 취급 받는 세상을 구름 위에, 관념 속에 건설하려 한 게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안에서, 그 현실을 변화시킴으로써 만들려고 했다. 그 변화는 원하든 원치 않든 당연히 정치적 갈등과 불화를 수반 할 수 밖에 없었다.

변화는 오히려 비현실적인 꿈을 꾼다며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사람들,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끈기 있는 노력에 의해 일어난다.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변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비현실적이라 느껴지던 세상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로 일어난 혜택은 시나퍼의 그늘처럼 모든 사람, 그들을 비웃고 조롱한 사람들은 물론 그들을 적대하고 탄압한 사람들에게까지 고루 나누어진다.

예수는 사회를 다시 세우려한 정치적 혁명가였다. 잘사는 유다와 사마리아인들이 아닌 멸시받고, 천대 받는 못사는 갈릴래아 사람들 편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해야 함께 공존하며 살아 갈 수 있는지를 삶으로 보여준다. 이런 예수를 보며 사람들이 점점 변해 간다. 


예수는 억압의 사회체제가 피억압자들의 비굴과 무기력에 힘입어 유지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예수는 수많은 인민들 앞에서 그들의 비굴과 무기력을 일깨우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전한 예수의 삶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김규항이 쓴 <예수전>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뜻을 새기면 다시 한 번 성경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한국교회에는 없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전 - 8점
김규항 지음/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