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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이야기

엄마 없는 아이 키우는 할아버지의 마음

글 제목만 봐도 마음이 짠하실 겁니다. 저희 반에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아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만 두었지요. 아직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다 돌아가셨다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큰아빠, 큰엄마, 사촌누나까지 한 집에서 함께 산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마음이 짠하기도 했고, 나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수업시간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도록 노력했고, 다른 아이 한 번 안아 줄 때 그 아이는 두 번 안아 주었습니다. 모자람의 정도는 다르니 똑같은 사랑을 주려면 모자람의 정도를 달리해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 문제에서는 호랑이 같았던 할아버지

그런데 할아버지는 저를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냐구요? 그럼 그 아이가 저희 유치원에 어떻게 오게 되었냐부터 아셔야 합니다.

(유치원 마당에도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쓸쓸한 가을이 되니 더욱 생각이 나네요...)

그 아이가 우리 유치원에 온 건 저희 유치원이 이사를 하게 되면서 였습니다. 기존에 있던 유치원과 저희 유치원이 합해 지면서 저희 유치원이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기존 유치원에 다녔던 거죠. 저희 유치원과는 교육방식이 완전히 다른 곳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엄마가 없는 아인데 공부를 안시키면 어쩌냐"고, "사람들이 뭐라 하겠냐"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도데체 뭘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유치원이냐"며 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많으셨습니다. 아마도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데 다른 유치원이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니 더욱 불신이 커졌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한 번은 아이가 숟가락을 잃어버리고 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 조차도 몰랐지요. 전화가 오셔서 아이에게 얼마나 신경을 안쓰면 아이가 숟가락을 잃어 버릴수가 있냐고 그 전에는 그런일이 없었다 하시더라구요.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많은 것을 해주시려는 가족들은 아이가 스스로 물건을 챙기게 하기 보다 뭐든 챙겨주다 보니 스스로 물건을 챙기는 습관이 없었던 겁니다. 이 숟가락이 누구꺼냐 물어도 아이는 몰랐습니다.  


또 한번은 유치원 근처에 살다 보니 아침마다 아이를 데려다 주시는데 현관에 나와 인사도 안하냐고 화를 내셨습니다. 교사실에 있다 보니 인기척을 안 하셔서 몰랐던 거죠. 몇 번 참으시다 화를 내신 모양이셨습니다. "우리애 왔어요~" 말씀해주셨다면 아니 헛기침으로라도 인기척 해주셨다면 바로 나갔을 텐데 그 때는 정말 속상하던군요. 

할아버지께서는 아이 문제에 관해서는  정말 민감하셨습니다.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씀을 하실때면 제 마음에 상처로 다가 왔습니다. 서운한 마음은 커지고 상처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할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얼굴을 뵙기가 두려웠고 되도록이면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노력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안듬이 계속되다 보니 문제는 계속 발생했습니다. 더운 여름에 숲속학교 한다고 애들 고생시킨다고 학부모들이 있는데서 화를 내시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화를 내셨습니다.

부모들 앞에서, 아이들 앞에서 화 내시는 건 정말 저도 화가 났습니다. 꼭 그렇게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셨어야 하는지, 차라리 둘만 있을 때 화내시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에게 그런일로 화를 내신다고 바뀔 수 있는게 아닌데 괜히 '내가 초등학교 교사면 그러셨겠나 안그러시겠지' 하는 자격지심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교실로 돌아와 눈물을 훔치면서도 아이에게 만큼은 그런 마음이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겠다 다짐했습니다.

 
다행히도 아이는 유치원 생활을 하며 많이 변했습니다. 눈치를 많이 보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씩씩하게 해내고, 장난도 많이 늘었고, 웃음이 늘어난 만큼 마음도 밝아진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아이에게 힘든일 안시키고, 항상 집에서 앉아서 지내는 편이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리에 힘이 없어 체육시간 조금 움직였는데도 다리가 모여 유치원 하루 쉬어야 겠다고 말하던 아이였는데 힘도 세지고 체력이 좋아져 몸을 움직이는 활동도 거뜬히 해내곤 했습니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정말 흐뭇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제마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더욱 힘든 것은 할아버지가 그러실 때마다 큰엄마께도 할머니께도 전화해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엄마가 엄마 역할을 해 주시는데 그나마 많은 힘이 되었지만 어떤 때는 전화를 하면 '이런 일은 할머니께 전화하라' 하셨습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잘 모르겠더군요.

참 이상하게도 안 좋은 일은 벌어진데 또 일어납니다. 다친데 또 다치고, 실수한 것에 똑같은 실수를 하듯이 말입니다. 실수 안해야지 했는데 저번 글에서 쓴 일이 벌어진 겁니다. 2010/10/27 - [아이들 이야기] - 어른도 아이에게 잘못하면 사과해야 한다. 정말 엎친데 덮친격이 었습니다.

(바깥놀이 간 아이들 모습입니다.)

그래도 노력을 했는데 한번은 아이가 그러데요. 숲속학교에서 아이들과 물놀이 하고 노는데, 장난친다고 물을 뿌렸더니 "그럼 우리 할아버지한테 다 말할 거예요" 그러는 겁니다. 그 때부터는 아이도 미웠습니다. 선생으로써 참 못났지만 성숙되지 못한 자세인 거 알았지만 내마음이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너마저 그러구나'싶었고, '그렇게 불만이실 거면 그만두시지 왜 계속다녀서 나를 괴롭히는지' 정말 의문이었습니다. 항상 마음 속에는 그런 마음을 품고 아이를 대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한든 엄마가 없는 것을 인정 했야 했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안스러우셨을 겁니다. 엄마의 모자람을 채워주셔야 겠다는 사명감이 있으셨을 겁니다. '내가 얼마나 좋은 걸 많이 해주는데 돈은 상관 없다' 말씀 하셨듯이 아이에게 늘 좋은 것을 많이 해주고 싶고, 늘 아이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계셨겠지요.

제가 할아버지 처럼 아이를 대해주지 않는다 생각이 드셔서 더욱 못 마땅 하셨겠구나 기대치에 못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듭니다. 


할아버지도 모든 가족들도 아이가 엄마가 없다는 것 때문에 하는 행동들이 아이를 더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까지도 말입니다. 모든 가족들이 엄마 없는 것을 인정하고, 그 마음을 버리고, 아이를 대해야 했습니다. 항상 '엄마가 없기 때문에' 아이에게 조그만 일이 벌어져도 예민하게 행동하시고,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만들었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키가 큰 사람이 있으면, 작은 사람이 있고, 얼굴이 하얀 사람이 있으면, 까만 사람도 있듯, 그냥 그런 것 처럼 엄마가 있으면, 없는 사람도 있듯이 자연스럽게 아이를 대해야 했습니다.

도망 다니기 바빴던 못난 선생

문제는 저도 그런 말 한번 해보려 하지 않았다는 거죠. 늘 큰엄마에게만, 할머니에게만 말했지 할아버지께는 말 못했습니다. 무섭다고 피하고 도망다니기만 바빴습니다. 지금은 많이 후회가 됩니다. 할아버지가 변하시든, 변하시지 않든 말해보려 노력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끝내는 그 아이 그만 두었습니다. 일본여행을 오래 다녀 온다고 하더니 그 후로는 다른 곳에 보내겠다 하시더군요. 그런데 막상 그만 두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제 마음에 짐으로 그 아이가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한 번씩 아이들이 그 아이 이야기를 합니다. 보고 싶다고도 하고, "오늘 결석한 친구가 누구지?" 확인하다 보면 늘 그 아이 이름이 나옵니다. 아직도 아이들은 친구를 기억하고 있나 봅니다. 그럴 때면 아직도 마음이 쓰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아이 이름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내 못남이 드러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참 못났지요?


지금에서야 그런 할아버지도 많이 힘드셨겠다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가가려 노력하지 않았던 점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좋은 말만 듣고 지내던 저에게 다끔한 충고 같았던 할아버지셨습니다. 많은 깨닫게 해주셨다 생각이 듭니다.

유치원 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상황에 부딪힙니다. 그러면서 저도 성장하고 있겠지요?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