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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교육의 병폐를 오키나와에서 보다.

따뜻한 남쪽나라 일본, 휴양의 도시 오키나와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식민지를 당했듯 식민지의 역사가  있습니다. 아니 오키나와도 일본에게 당했다는 것이 맞겠습니다.

오키나와는 원래 '류쿠왕국'이라는 작은 나라였거든요. 나라를 빼앗겨 일본에게 지배 당하고, 또 미국에게 넘겨져 지배를 당하다 끝내는 나라를 찾지 못하고 일본 땅으로 묶여 버린 곳입니다. 자신들의 나라도 찾지 못한 땅, 얼마 전 그 곳에 다녀왔습니다. 


오키나와에는 동굴이 많습니다. 그 중 '치비치리'라는 동굴을 보고 왔지요. 일본 평화단체에서 열성적으로 설명을 해주시는 덕분에 많은 것을 알고, 느끼고 왔습니다. 잊혀져가는 오키나와의 역사를 알리고자 동굴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치비치리 동굴은 66년 전 지역민 140명이 집단 자결한 곳이었습니다. 아직도 동굴 속에는 그 분들의 유해가 들어 있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된일인지 19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동굴 앞, 눈물을 흘리며 열성적으로 설명해 주신 분입니다. 정말 인상적이었지요.)

동굴 속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1945년 오키나와 전이 일어날 당시 54만명의 미군들이 50만명이 살고 있는 오키나와를 점령합니다. 많은 여객기과 배를 끌고 왔지요. 지역민보다 많은 군인들이 쳐들어오니 이것은 처음부터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미군들도 오키나와에 올 당시 꼭 소풍을 오는 것 마냥 왔다고 그날 신문에 나와 있었습니다.(설명해 주시는 분이 보여주셨습니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 보다도 동남아와 중국과 가깝게 위치한 남쪽 지역이기 때문에 미군들이 더욱 빨리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오키나와가 군사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하더군요.
 
미군들이 쳐들어 올 때 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습니다. 일본이 지는게 당연하지만 미국과 더 나은 협상을 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희생양으로 삼아 땅을 내준 것입니다. 오키나와가 일본의 땅으로 귀속되었지만 일본땅으로 인정해 주지 않은 태도였습니다.

어찌되었든, 미군들은 오키나와는 산이 없고, 동굴이 많아 사람들이 동굴로 도망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로 사람들은 동네마다 있는 동굴로 숨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미군들은 남자는 살을 벗겨 죽이고, 여자는 강간해 죽인다'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돌았던 겁니다. 일본사람들은 자랑스런 천황의 후손으로써 불결하게 죽는 것은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세뇌 교육 받고 자란기에 사람들에겐 미군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럽고, 끔찍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동굴을 점령한 미군들이 '안심하고 나와라'방송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굴 속에 있던 사람들은 독안에 든 쥐가 된 셈이지요. 미군들에게 죽음을 당할 바에 자랑스런 천황의 후손으로 남겠다며 모두 자결을 합니다. 

 내 형제를 죽이고, 내 부모를 죽이고, 내 자식을 죽입니다. 그리곤 자신이 자신을 죽입니다. 18살 소녀 같은 경우에는 '부모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면도기와 날카로운 막대기로 동맥을 끈었다고 합니다. 1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치비치리'동굴에서만이 아닌 대부분 동굴로 피신했던 사람들은 모두 자결을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오키나와 인구의 절반 이상이 희생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모두 살아 나온 동굴도 있었다고 합니다.

(치비치리 동굴 앞입니다.)

천명 모두가 살아 나온 시무쿠가마 동굴

치비치리와 근접한 곳에는 '시무쿠가마'라는 동굴이 있습니다. 당시 그 곳에는 천명의 사람들이 동굴에 피신해 있었지요. 그런데 그 곳 사람들은 하나 죽은 사람 없이 모두 살아 나왔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2명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젊어 하와이에서 유학을 하고, 퇴직하면서 노년을 오키나와에서 보내기 위해 왔던 오키나와사람이었죠. 여기 동굴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2명의 미국생활을 하고 온 사람이 보았을 때 어의가 없는 행동이었지요. 

'자신들은 미군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미국에서 살았기에 알고 있다. 자신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설득하면 우리는 모두 살아 나갈 수 있다. 아까운 목숨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 자랑스런 죽음란 없다'는 말로 사람들을 설득해 냅니다.

2명은 영어가 되니 미군들과 교섭을 할 수 있었고, 협상을 하게 됩니다. 동굴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일본군도 아니고,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은 무고한 사람들이란 것을 알리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 동굴 속에 있던 사람들은 유일하게 모두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세뇌교육의 병폐

정말 어떤 경험을 하였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이렇게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두 동굴의 역사를 들으며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랑스런 천황의 후손이라는 세뇌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말 한 번 해보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제국에 대한 세뇌 교육이 자신들의 자식을, 부모를, 형제를 죽인 것입니다. 그 어둠 속에서 얼마나 처절한 일들이 벌어 졌을지 상상하면 정말 끔찍합니다.

잘못된 교육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 주는 역사라 하겠습니다. 다른 동굴에도 세뇌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 반복되지 않기 위해

이번 평화 여행을 하면서 역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도 나치에 대한 역사 교육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르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요즘 국사책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국영수 위주입니다. 하물며 있는 것도 빼려고 하고, 왜곡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잘난 역사만이 역사가 아닙니다. 부끄럽고 아픈 역사도 역사 입니다.

잘난 역사는 자만하게만 만듭니다.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역사는 가르쳐야 하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아픔을 모르는 아이들,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되고, 승리에 우월적 의식만은 가지고,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경험하지 못했지에 배려할 수 없는 아이들도 우리는 키우고 있습니다. 


1등한 하면 된다는,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나만 잘하면 된다는 무서운 세뇌교육을 이 나라는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참으로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