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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

어린이날 선물 안 받는 유치원

제가 일하는 유치원에서는 스승의 날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날에도 선물을 일체 받지 않습니다.

새학기가 시작될 무렵 학부모님들에게 스승의 날은 물론이고 어린이날에도 선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유치원을 방문할 때는 꼭 '빈손'으로 오라고 당부합니다.

부모님들 중에는 유치원에 올 때 '빈손'으로 오라는 것과 스승의 날에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어린이날에도 선물을 보내지 말라는 것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의 같은 반 친구들에게 어린이날에 맞춰서 뭐라도 하나 해주고 싶은데...왜 안 되는지 약간 따지듯이 묻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사실, 스승의 날에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을 정착시키는 것도 꽤 오랜시간이 걸렸지만, 어린이날 선물을 받지 않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거쳤습니다. 가끔은 학기초에 공지해드린 것을 잊어버리거나 혹은 유치원 선생님들을 시험(?)해보려고 하는 것인지 어린이 날에 선물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열이면 열 모두 되돌려보냅니다.




그럼 왜 유치원에서 어린이날에 선물을 받지 않을까요? 

부모님들께서는 그냥 '마음을 담아서', '아이들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라고 말씀하시지만, 막상 선물을 보내 온 집 아이는 반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가 '요플레' 보내주셨다. 우리엄마가 '색연필'보내주셨다하고 자랑하고 다닙니다. 

어떤 부모님은 아이에게는 비밀로 하고 몰래 보냈다고 하시는데...아이는 귀신(?)같이 자기 엄마가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자랑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더군요.

어떤 친구의 부모님이 같은 반 친구들에게 어린이 날 선물을 나눠주면,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도 다른 친구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싶어 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 친구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사 달라고 조르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반 아이들 모두에게 선물을 사줄 형편이 안 되는 부모님들에게 마음 아픈 일이 될 것이 뻔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학급 아이들 모두에게 나눠주라고 보내는 어린이날 선물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단체 선물로 보내오는 선물은 중국산 문구류 혹은 패스트푸드, 공장과자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요즘 아이들 중에 크레파스, 연필, 스케치북, 색연필이 부족한 아이들은 없습니다. 집안 형편이 웬만큼 어려운 경우에도 학용품이나 문구류가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산 제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날 단체 선물로 보내오는 물건이나 장난감 종류들은 십중팔구는 중국산입니다. 품질이 낮은 경우가 많고 이내 고장나거나 망가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학부모들 중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오는 허접한(?) 어린이날 선물이 쓰레기만 늘인다며 달가워하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아울러 저희 유치원에서는 5월 한 달 동안 공장과자와 가공식품, 패스트푸드를 먹지 '공장과자 안 먹기 운동'이라고 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과자와 가공식품의 유해성을 알리는 실험을 비롯한 여러가지 수업을 하고, 과자와 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일주일을 지내는 체험활동도 합니다.
 
부모님들이 대형마트에가서 쉽게 돈 주고 사서 보낼 수 있는 어린이날 선물은 앞서 소개한 품목을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따지고보면 어린이날 선물이라고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몸에 나쁜 간식(공장과자 패스트푸드)을 나눠먹이거나 혹은 꼭 필요하지도 않은 학용품이나 완구를 나눠주는 날이 되기 쉽상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소비문화에 찌든 어린이날은 아이들이 돈의 소중함이나 물건의 소중함을 알 수 없게 만드는 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또  저희 유치원만 하여도 아이에게 어린이날 선물도 못할 만큼 정말 형편이 어려운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아주 소수이기는 하지만 부모님들 중에는 아이들이 허접한(?) 선물을 받아오면 자기 아이가 가난한 아이 취급을 당한 것처럼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유치원에서는 어린이날은 제정한 방정환 선생님의 참 뜻을 돌이켜보자는 안내문을 가정마다 보냅니다.  일제치하에서 가난하고 힘들게 지내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참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5월 5일 어린이 날이 되면, 부모님과 함께 80여년 전 일제 치하에서 어린이날이 만들어졌을 때와 다름없이 지금도 가난과 기아 질병에 시달리는 북한 어린이들, 이라크와 북아프리카, 동티모르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을 비롯한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어린이날이 처음 만들어지던 80여 년 전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 대부분은 물질적으로는 1년 내내 어린이날과 다름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선물에 휘둘리지 않고 어린이날의 참 의미를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어린이날이 중국산 문구와 장난감을 나눠주고 패스트푸드와 공장과자를 나눠먹이는 날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