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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숲속학교가 있던 날 우리는 어김없이 팔용산으로 향했습니다. 아빠선생님이 운전해주시는 달림차를 타고 말이지요. 노래도 흥얼흥얼 신나게 부르며 산을 오르는데 웬걸! 지게차와 자갈더미가 길을 턱하니 막고 있는 것입니다. 일하시는 분들도 제법 많았습니다. 비켜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지나갈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여쭈어보았습니다.

“여기 못 지나가나요? 애들이랑 저 산에 가야되는데요”
“애들 데리고 등산하시려구요?”
“아니요 수원지 밑에서 놀려구요. 조금 있으면 애들 더 많이 올라 올건데요”
“수원지 밑이요? 안돼요 안돼! 조금 있으면 헬기가 와서 이거(자갈) 수원지로 나르는데 혹시라도 애들 머리에 떨어지면 위험 합니다”

결국 팔용산 숲속학교 가는 걸 포기해야 했습니다.
승합차는 우리를 내려주고 떠났고, 동생반 아이들을 태우고 온 초록별과 은하수는 차를 돌렸고, 저희는 공중으로 붕~떴지요. 그래서 아이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방법과 걸어서 가는 방법이 있다고 말입니다.

얼마 전 봉암갯벌로 걸어서 바다까지 다녀온 아이들이라 무슨 일이든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만장일치로 걸어서 Y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삼각지 공원도 있으니 그 곳에서 놀고 가기로 하고 말이지요.



삼각지 공원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저기가면 탱크있어요 선생님 가봐요”하더군요. 부모님과 와본 아이들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 가보니 정말로 탱크가 있더라구요. 마산시내에 탱크가 있을 거라곤 생각 못해봤는데 말입니다.

왠지 섬뜩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저 탱크로 인해 누군가가 죽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도 아팠습니다. 시내 한 복판에 떡하니 전쟁무기를 전시해놓은 걸 보니 화도 나더군요.


아이들과 구경을 하며 "전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서로 죽이는 것이라 아니라 사이좋게 행복하게 살아야지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거"라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때 또 한 친구가 저쪽으로 가보자합니다. 저쪽에 가면 박물관이 있다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아이들과 가보니 베트남전쟁기념관이 있었습니다. 이 무지한 선생인 저는 그 날 알았습니다. 삼각지공원에 그런 곳이 있다니 말이지요.


먼저 기념비부터 구경하고 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하였습니다. 기념비를 쭉 둘러보니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신 분들 이름이 쭉 쓰여 있었습니다. 참 이름도 많았습니다. 아까운 목숨이라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몇몇 아이들이 기념비에 새겨진 글을 읽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유와 평화의 수호를 위하여...(이하생략)”

잉? 자유와 평화의수호라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 무엇인가 속에서 올라옴을 느꼈습니다. 자유와 평화의 수호를 위해서라면 전쟁을 절대해선 안 되지요. 아이들이 배울까 두려운 마음이 생겨 다시 한 번 더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자유와 평화엔 전쟁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 당시 대통령이 잘못 판단하여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하는데 도와주러 간 것이라고요. 이 분들은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에 참전하여 미국을 도와주어야 되는 걸로 아셨던 거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건 잘못된 행동이었으며 이 전쟁은 한국 역사에서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선량한 시민들이 최고 피해자가 되는 것이고 선량한 시민들이란 너희와 같은 아이들, 우리의 가족들이 되는 것이라고도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기념관을 둘러보며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열변을 토했지요. 일곱 살 아이들에게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했지요. 하지만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아~ 선생님 말씀이 그 뜻이었구나”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아이들이 가끔 생각이 나는지 이날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곤 했습니다.  지금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팔세스타인에도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하며 전쟁 없는 평화로운 지구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Posted by 골목대장허은미, 개똥이샘 골목대장허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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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아이들은 몇 달 뒤면 초등학교에 갑니다. 새로운 곳에 간다는 설레임과 두려운 마음이 교차하겠지요. 그건 어른들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을 사귀고, 생활을 익히고, 난처한 일을 당할 때면 그것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른보다도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훨씬 더 잘 적응해 나갑니다.


아이들과 조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활동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얼마 전 "걸어서 바다까지"(YMCA에서 봉암갯벌까지) 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기도 했지요.

팔용산으로 출발~!
아빠선생님과 담임인 저와 21명 아이들은 팔용산 정상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주먹밥과 우리밀 라면, 물 그리고 간식으로 귤을 싸들고 산으로 갔습니다.

출발 코스는 돌탑이 있는 등산길이었습니다. 산 입구에는 친절하게도 팔용산지도가 있었지요. 아빠 선생님이 우리가 갈 코스를 설명해주셨습니다. 나무작대기를 하나 들고서 말이지요.


"선생님 이거 누가 다 쌓았어요?" 돌탑길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물어봅니다. 엄청난 양의 돌탑들이 아이들이 보기에도 신기했나 봅니다. 돌탑을 구경하면서 아이들도 저마다 돌탑이 넘어 질세라 조심스럽게 돌을 하나씩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소원도 빌었습니다. 두 손모으로 두 눈 꼭 감고 말이지요.

"정상은 언제나와요?"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한 아이가 "에이~ 괜히 왔다 힘들어 죽겠네"합니다. 저 앞에는 씩씩하게 가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맨 뒤에 오는 아이들은 힘이든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럼 선생인 저 또한 힘이 쫙 빠집니다. 그렇다고 저까지 힘빠지는 소리하면 안되겠지요. 저는 희망을 전해야 하는 선생님이니깐요. "힘내 할수있어 화이팅!"을 연발 외치며 올랐습니다.


산에서는 사람도 많이 만났습니다. 꼬맹이들이 등산을 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어른들은 꼭 나이를 묻습니다.

"너희 초등학생이가? 몇살이고?"
"우리 7살이예요"


아이들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며 뿌듯해하고 저 또한 흐믓해졌습니다. 당연히 유치원생이 등산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셨겠지요. 

 
조금씩 오르다 보니 정상이 눈에 들어오고, 흥분한 아이들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습니다. "우리가 해냈다 해냈다"하며 아이들이 외쳐댑니다. 여기저기서는 환호성이 들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놀라워하며 아이들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정상에도착하니 더욱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마산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지요. 신기해 하는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공설운동장을 찾고, YMCA를 찾고, 우리집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봅니다.

괜히 왔다 => 잘 왔다.

"괜히 왔다" 말하던 친구얼굴을 보니 기쁨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잘왔다"로 바꼈을테지요.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작은 정자에서 싸온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여기저기 부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말이지요. 등산 온 어른들은 "우리도 다음에 저렇게 주먹밥 싸오면 되겠다"하며 부러워하더군요.

다함께 모여 앉아 먹는 주먹밥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리곤 간식으로 귤도 먹었습니다. 오후 3
시까지 YMCA로 돌아가야 하기에 서둘러 정리 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한 수원지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수원지 쪽으로 내려와 숲속학교(아기스포츠단 숲에서 하는 활동을 말함)할 때, 우리들 집결지에서 라면도 끓여먹기로 하였습니다. 힘이 빠질 때면 우리는 라면을 생각하며, 라면을 희망삼아 열심히 내려왔습니다.  


"햇님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 날은 갑자기 날씨가 영하로 떨어졌던 굉장히 추운 날씨였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몸이 휘청거리기도했지요. 그래도 햇빛이 있을 때에는 덜 추웠습니다.

그런데 바람에 밀려온 구름이 우리를 따라 오더니 햇빛을 막어버리는게 아니겠습니까? 아니라도 추운데 무심하게 햇빛까지 막아버리고 말이지요.


아이들 중 하나가 햇님을 응원했습니다. "햇님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구름 져라 져라 져라"열심히 응원을 하니  구름이 정말로 지나가고 햇님이 나왔습니다. 기뻐서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지요.

물론 구름이 이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 또 아이들은 응원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는 작아졌지만 말이예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라면을 먹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은 산을 내려오며 열 번도 넘게 "선생님 라면을 먹을 수 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추운날, 산에서 먹는 라면 맛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하여, 아빠선생님이 먼저 내려가 라면을 끓여놓기로 하였습니다. 아마 라면을 못 먹었다면 아이들은 엄청 실망을 했을 것입니다.


걸음을 서두르고 길을 재촉하여 아슬아슬하게 도착하여 정말로 라면을 먹었습니다. 따뜻한 국물과 꼬불꼬불한 라면을 후~후~ 후루룩 쩜쩜....... 추운날 산에서 먹는 라면 맛은 정말 함께 먹던 사람이 죽어도 모를 기막힌 맛 입니다.
 
등산하는 동안 어른분들을 만나면 아이들에게 칭찬도 많이 해주셨지만, 정상까지 갈 수 있겠냐며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마 '저 선생님들 애들 데리고 위험하게 여기까지 오나?'하는 생각도 하셨을 겁니다.

조금 힘든 일도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숨어 있는 능력을 조금씩  깨워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걸어서 바다까지 다녀오고, 팔용산 등산을 거뜬히 해낸 이 아이들은 내년 1월 엔 지리산 노고단에 오릅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기스포츠단 친구들은  매년 1월에 지리산 노고단 등반을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기대하세요.


Posted by 골목대장허은미, 개똥이샘 골목대장허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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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혜린 아빠 2008.12.08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은미 샘 여전하시네요.
    추운 날씨에도 아이들과 팔용산을 씩씩하게 오르는 모습이 선합니다.
    아기스포츠단 활동들을 보니
    2005년 혜린이가 처음 Y에서 생활했던 생각이 나네요..
    아이의 단복입은 모습, 즐거워했던 여러 캠프활동들....
    지금은 1학년인데 공장과자, TV등 안하기 운동은 모두 잊어버렸네요..
    또 다른 것들을 배우며 자라고 하겠지요..

    또 다른 공간에서
    마산YMCA 아기스포츠단을 만나게되어 행복하구요.
    노고단 도전도 기대하겠습니다.

    • 골목대장허은미 2008.12.09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버님~! 정말 반갑습니다.
      저희를 아직 잊지 않으셨네요^^ 기쁩니다~
      저도 혜린이와 함께한 추억들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어요. 특히 Y와서 처음 맡은 반 아이기에 더욱 그렇답니다.
      공장과자 안 먹기와 같은 활동이 끝까지 계속 되기를 바라지만 초등학교에 가면 유혹을 이겨 내기가 힘든가 보더라구요. 학년이 높아질 수록 말이예요. 그래도 혜린이는 나쁜 것을 알고있으니 그 것만으로도 나아지리라 생각됩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굉장한 차이거든요.
      혜린이가 벌써 1학년이 되었군요. 정말 빠른 것 같아요. 보고싶다고 꼭 전해주세요~
      졸업생 캠프에 놀러와도 좋을 것 같아요.
      항상 건강하세요~

  2. 행복님 2011.01.19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름과 햇님의 숨박꼭질
    겨울 추울때는 구름이 정말 얄밉지요
    그러나 여름에는 어찌나 예쁜지
    이런것이 우리 마음인가 봅니다.
    그러나 겨울 눈온날 산행길에서 먹는 그 라면맛 입가에 군침 돕니다.
    감사 합니다.

걸어서 바다까지, 걸어서 갯벌 까지

유달리 따뜻했던 금요일! 아이들과 봉암갯벌까지 모험놀이를 다녀왔습니다. 일곱 살 아이들이 두 발로 걸어서 다녀왔답니다. YMCA에서 봉암갯벌까지 가려면 아이들 걸음으로 한 시간 반 가량걸립니다.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걷다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로 아이들의 걸음을 멈추게하기 때문이지요.

며칠 전부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봉암갯벌까지 걸어서 갈텐데 힘들수도 있다고 말이지요. 어른들도 힘든 여정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놀러간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신이 났습니다.

"선생님! 나는 씩씩해서요 그런 거 쯤은 하나도 안힘들어요. 뛰어서도 갈 수 있어요"

 정말 씩씩한 아이들 입니다. 무조건 갈 수 있으니 꼭 가자고 성화입니다. 저희반 이름이 '바다반'이라, 아이들에게 바다까지 걸어서 가는 일은 더욱 특별하고 신나는 일 입니다. 일곱 살 아이들은 단지 '바다'라는 글자가 같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거든요.

그렇게 힘을 내서 아이들과 다녀오기로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은 준비물로 여벌옷과 신발 한결레, 물을 챙기고 저는 주먹밥을 준비하기로 하였습니다. 여벌옷은 뭐한다구요? 혹시나~갯벌에서 진흙놀이 하다가 다 젖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드디어 기다리던 금요일 아침, "바다반 화이팅!!"을 외치고 출발~ 
신난 아이들 입에선 노래가 흥얼흥얼 흘러나옵니다. 아빠선생님도 같이 따라가 주셨습니다. 제가 앞장서고, 가운데는 아이들, 그리고 맨 뒤에는 아빠선생님이 아이들을 살피며 함께 걸어갔습니다. 

공설운동장을 지나고, 홈플러스를 지나고, 신세계백화점 앞 육교도 건넜습니다. 신호등도 건넜습니다. 신호등을 건널 때는 정신을 빠짝차려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한눈팔지 말고 건너야한다고 일러줍니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장난치다 초록불이 빨간불로 금새 변해버리기 때문이지요.

15분쯤 걸었을 때 삼각지공원이 나왔습니다. 가는 길에 있는 유일한 공원이기에 아이들보고 쉬어가자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선생님 쉬었다가면 힘들어져요. 그냥가요"
몇 번이고 물어봐도 그냥 가자고 합니다. 아이들이 공원을 마다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봉암갯벌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십분쯤 걸었을 때 아이들이 쉬자고 하였습니다. 힘드냐고 물어보니 전혀 힘들지는 않지만 잠깐 쉬었다가 가자고 합니다. 정말 귀여운 녀석들이지요. 그렇게 걷다가 힘들면 잠깐 멈춰 서 거리에 떨어진 나뭇잎을 하늘로 날려보고, 물도 마시고 하였습니다.

한시간 반쯤 걸었을 때 봉암 다리 옆으로 바다가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기쁜지  "바다다!!"외쳐 댔습니다.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 또한 그렇게 바다가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바다를 보며 갯벌이 있는 곳까지 건는데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또 다시 노래소리가 들립니다. 도로의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도 우리 노래를 막을 수 는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주먹 밥

드디어 봉암갯벌도착!!

가방을 풀고 싸온 주먹밥을 먹기 전 기도를 하였습니다. 항상 감사함의 기도를 하고 밥을 먹는데, 아이들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주먹밥을 먹을 수 있음을 감사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주먹밥은 완전 꿀맛이었습니다. 이 세상 주먹밥을 다 먹어보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걸어서 바다까지 가서 먹은  주먹밥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주먹밥"이라고 하더군요.

평소 편식 없이 뭐든 잘먹는 아기스포츠단이지만(물론 몇 명은 예외지만^^)이 날은 싸온 깍두기까지 한숟가락씩 퍼먹었습니다. 

봉암갯벌에는 갯벌을 지키는 관리인이 있었는데, 갯벌을 보호하기 위해 안으로는 들어가면 안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갯벌에는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땅을 사람들이 밟으면 딱딱해져 생물들이 살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순간 이를 어쩌나 난감하였습니다. 갯벌에서 놀자고 여벌옷에 운동화까지 하나씩 더 들고 왔는데 말이지요. 아이들도 아쉬운지 설명을 해주어도 "왜 들어가면 안되요?" 하고 계속 물어옵니다.

그래도 다행이 봉암갯벌 측에서 구경오는 사람들을 위해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만들 수 있게 해주어 진흙놀이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다까지 걸어서 다녀왔습니다. 사실 어른인 저도 다리가 아파 속으로는 '아~ 힘드네'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갯벌에서도 끝까지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체력이 정말 좋은 아기스포츠단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어디로 떠날까요?

Posted by 골목대장허은미, 개똥이샘 골목대장허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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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미예 2008.12.01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에서 진실을 읽어봅니다. 아름다움을 읽어 봅니다. 잘봤습니다.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주먹밥이군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2. 나는골목대장 2008.12.02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으로 읽어 주셔 정말 감사합니다^^ 힘이나네요. 덕분에 오늘도 행복한 날이 될 것 같습니다~세미예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3. 섹시고니 2008.12.13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네요. ㅎ / 저도 애들 데리고 산책도 많이 하는 편인데요.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튼튼해요. 왜냐하면 마음이 부자니까요. ㅎ

  4. 행복님 2011.01.19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도 알 거예요
    갯벌 장난을 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주먹밥 먹은 추억은 꼭 가슴속에 묻어 둘 거예요.
    행복한 여행 이였습니다.
    감사 합니다.


'노바디' 춤추는 일곱살 아이들

아침 차량지도를 끝내고 교실로 왔어요. 그런데 여자아이들이 저에게 달려오는 거예요. "선생님 이것봐요 이것봐요~" 하면서 말이지요. "뭔데~~"하며 아이들 손에 이끌려 교실로 가보았어요.


그런데 아주 익숙한 노래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평소 동요가 흘러나오는 교실에서, 세상에 아침 출근길에 듣던 그 노래 '노바디'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순간!! 저는 당황했습니다. 끄라고 해야할지... 어떻게해야 할지 말이지요. 일단 아이들이 신이나서 저를 데릴러 왔으니 한번 어떻게하나 보기로 했습니다.

'노바디'노래가 흘러나오고 아이들은 노래에 맞추어 흔들흔들 춤을 추었어요. 원더걸스가 추는 춤을 유심히 보았나 봐요. 제법 비슷하게 춤을 추는데 정말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음이 나왔어요. 구경하는 친구들로 어찌나 신나 하는지 저까지 기분이 좋아졌어요.

나이트 키즈클럽, 아세요?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즐거워하기에 노래부르고 춤추는 것을 그냥 두었습니다. 말로 아이들에게 허락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제 마음 속으로 허락해 준거예요. 사실 제가 교사랍시고 허락하고 말고 할 것은 아니잖아요. 교실은 아이들 것 이니까요.

구경하던 남자친구들은 "여기가 무슨 나이트가?" 합니다. 그런데 나이트라는말이 재미있었는지 자기들끼리 '나이트키즈클럽'이라고 이름까지 짓고 열심이 놀았어요. 남자친구들은 스케치북에 글자까지 적어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하였답니다.

음악이 담긴 CD는 찬희가 들고왔다고 했습니다. 여자친구들은 그 CD를 쉬는시간마다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어요. 안무도 늘어 여러가지 춤 동작이 나왔지요. 몇 번 그렇게 하더니 이제는 관객을 모으는 겁니다. 의자를 가져다 놓고 친구들보고 앞에 앉아라고하고 "너희는 관객이깐 조용히하고 잘봐"합니다.

아이들의 노바디 춤은 점점 놀이의 형태를 갖추어 갔어요.

 점심시간에는 옆반인 시내반으로 CD를 들고 가 노래를 틀고 춤을 추었어요. 관객은 당연히 다섯살 꼬맹이들 이지요. 동생들을 자기들 앞에 앉아라 그러고는 "여기는 무대니깐 올라오지마~"합니다. 그러고는 사회자 한명이 나와 "지금부터 노바디 공연을 하겠습니다. 관객들은 모두 조용히 하시고 봐주세요"합니다.

전 교실 순회 공연에 나서다.

동생들은 언니가, 누나가 하는 것을 멍~하게 쳐다보더니 금새 좋아합니다.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제법 오래 관객이 되어 지켜보았습니다.

다음 날에는 수현이가 최신곡이 담긴 노래CD를 들고와 다른 노래들까지 틀어 놓고 신나게 춤추고 놀았어요. 우리반 여자친구들은 몇 일은 더 그러고 놀았지요.

나중에는 초대권까지 만들어 친구, 동생, 선생님들에게도 나누어 주며 구경오라고 했답니다. 교실공연이 아니라 체육실에서 큰 공연을 했어요. 

아이들은 제가 가르친 노래보다 더 신나고, 재밌게 노래와 춤을 즐겼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즐거워 한다면 가요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아이들의 꿈이 담기지 않은 가요를 가르칠 생각이 아니예요. 다만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자발적으로 놀이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가요도 아이들에게 나쁘지만은 않다라는 생각이 든 것 뿐이랍니다.

아마 제가 가요를 강압적으로 가르쳤다면, 저렇게 신나지 않았을 거예요. 자기들이 스스로 원해서 한 것이었으니 더욱 신이 났었겠지요.

아이들은 공연을 기획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늘 함께 지내는 저도 깜짝 놀라습니다. 어린반에 가서 공연을 할 때, 체육실 공연을 위한 초대장을 만들었을 때는 더욱 그랬어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스스로 배움을 익혔어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삶을 배운다.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규칙을 만들고, 친구와 사귀는 방법, 양보하는 법, 타협하는 법, 단합심, 패배와 승리를 경험하는 것 등 무수히 많은 것을 놀이를 통해서 배웁니다. 그래서 놀이를 잘해야 머리도 좋아지는 것입니다. 머리를 좋은 아이로 키우려면 많이 놀게 하여야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내일은 또 무슨 놀이하며 무엇을 배울까요? 


 

Posted by 골목대장허은미, 개똥이샘 골목대장허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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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님 2011.01.15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요
    놀이는 우리 어린이에게는 정말 소중한 것이 랍니다.
    저가 어릴때에는 자치기,구슬치기,닥지치기등등 무슨 무슨 치기 놀이가 많았답니다.
    그 놀이를 통하여 모험심과 승부욕 그리고 지는 법을 배우고 공포심을 이기는 법도 배웠지요.

  2. Lore 2012.03.19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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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은 3공동체가 있습니다. 우리반이 21명이니 한 공동체당 7명씩됩니다. 두달에 한번씩은 공동체를 바꾸는데 몇 일 전 바꾸어 공동체 이름도 제각각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공동체, 비행기공동체, 태권브이공동체였습니다.

과연 공동체 이름은 어떻게 정할까요? 선생인 내가 부르기 좋게, 기억하기 좋게, 편하게 지어주어도 되겠지요. 하지만 우리반 공동체 이름은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습니다. 내 공동체가 아니라 아이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지요.


공동체를 정할 때에는 임시로 1번부터 3번까지 쪽지에 적어 제비뽑기로 정합니다. 아이들이 모두 쪽지를 잡으면 정말 보고 싶어 안달합니다. 그렇다고 치사하게 먼저 펼쳐보기는 없습니다. 먼저 봐 버린다면 늦게 뽑는 친구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고문이될테니깐 말이죠.

그렇게 쪽지를 잡으면 아이들은 저마다 기도를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공동체가 있을 것이고, 같은 공동체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을테니 말이죠. 여기 저기서 '제발~제발~'하는 간절한소리가 들립니다.

모두가 다 함께 하나씩 쪽지를 잡으면 '하나 둘 셋'하는 구령과 동시에 쪽지를 펼치는데 환호성이 장~난이 아닙니다. 정말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소리들을 질러댑니다. 반응도 다양합니다. 기분이 좋아 "와~"하며 친구를 얼싸 앉고 동동 구르는 친구가 있는 반면 "에이~~"하며 아쉬워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찌됐든 "니는 니는 뭔데?" 하며 금방 무리들을 찾습니다. 아

이들의 이런 반응이 있기 때문에 제비뽑기 후에는 얼마간의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이런 반응의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공동체가 정해지면 이제 이름을 정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들은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우리반 아이들이 7세반이기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도 처음 할때에는 서툴지만 몇 번 하다보면 정말 저 아이들이 다 컸구나 생각이 들만큼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친구의 의견을 들어주며, 조율해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날 정해진 공동체이름은 무지개공룡공동체, 대한민국공동체, 새롬공동체입니다. 무지개공룡은 아마 서로 의견을 주고받다가 2개를 골랐는데 하나만 고를까하다 두개를 합친 것이겠지요. 어떻게 합칠걸 생각했을까요? 정말 기발한 생각입니다.

대한민국공동체는 얼마전'아름다운우리나라'라는 노래를 배운 영감으로 지은 듯합니다. 미자막 새롬공동체는 블럭피아학원에 다니는 아이의 의견이 뽑힌듯 합니다. 학원에서 새롬반, 창의반, 응용반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공동체 공동화를 그리기로 했습니다. 그림도 자기 마음대로 그린다면 좋겠지만 그건 늘상 하는 거고 요것은 공동화이기에 그럴 수 없습니다. 서로 의논해 그려야 합니다. 사실... 저는 기대 안했습니다. 요 개구장이 아이들이 항칠을 할 거라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왠걸 서로가 자기 생각을 말하고 니는 이걸 그리고 나는 요걸 그리고 저마다 역할이 주어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 정말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감동 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자기 공동체를 잘 표현 할 수가 있을까요? 아이들의 힘은 대단합니다. 못할 거라 생각했던 내가 한심스럽고 미안했습니다.

무지개 공룡공동체는 무지개와 공룡을 그리고 전지 위 왼쪽 귀퉁이에 자기들 자리인 책상과 의자까지 인원 수에 맞추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대한민국 공동체는 맨 위에 공동체 이름도 적어 놓고 저마다 자신을 그림으로 그리고 이름도 적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고우리?와 새끼라고 그림이 있었습니다. 고우리는 태준이가 그런거라하여 물었습니다. "태준아 고우리가 뭐야?" "내 이름이예요 난 이제 고우리예요" "정말? 그럼 송고우리야?" "아니요 그냥고우리예요"합니다. 그리고 새끼는 지환이가 적은 건데 물어보니 부끄러워합니다. 아마 장난을 친 것이겠죠 . 마지막 새롬도 기똥차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정말 누가 봐도 새롬이구나 싶은 새롬성도 그리고 자신들 또한 그림에 그려놓았습니다.


그림은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아마 떨어질 때까지 붙어 있을 겁니다.
항상 활동을 할때면 제가 개입하지 않아도 우리아이들은 너무나도 잘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말이죠. 오늘 우리 아이들 참 기특하고 대견스러웠습니다. 우리아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오늘 수업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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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5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이윤기 2009.04.28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3. 행복님 2011.01.15 2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의 힘은 정말 무궁무진 하답니다.
    그 힘들이 우리 미래를 열어 가리라 이 행복님은 생각 합니다.


7월 31일 - 화려한 일본 사찰

 

공식적인 일정이 없는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돌아오는 날에는 일정 없이 비행기만 타야했기에 우리는 31일을 마지막 날이라 했다. 일본의 여러 관광지를 둘러 볼 계획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8시 15분에 차를 탔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첫 번째 코스는 금각사였다. 버스에서 내려 금각사로 가는 길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는 통로라 나무 향이 정말 좋았다. 관광객들만 많이 없었다면 만끽할 수 있었을 테고, 여유가 있었다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만끽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일본 관광지에는 정말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이 많았다.


금각사는 정말 금색이었다.^^ 금으로 칠한 전각이었기에 이름도 금각사였던 것이다. 화려하게 빛나던 금각사는 연못 안에 있었는데 연못에 비친 금각사가 훨씬 아름다웠다. 한 시간 안에 그 넓은 곳을 둘러보고 오라니... 정말 빨리 구경한다고 고생했다. 중간 중간에 사진도 찍어야 했기에 말이다. 나는 Y에서 DSLR 캐논카메라를 빌려왔었는데 좋은 카메라 덕분에 사진 찍어 달라는 선생님들이 많아 인기가 좋았다. 솔직히 조금은 귀찮은 면도 있었다.ㅋ  갈려고 하면 사람들이 사진 찍어달라고 모여들고 확인하고 그랬기 때문에...^^


그 와중에 기념품가게에 발길이 멈췄다.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날 유혹했다. 갖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는데 꾹! 참고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날씨가 정말 더워서 우리 모둠은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일본이라 천만다행이었지 우리 애들이라도 보는 날에는 큰일 날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아이스크림이라고 다른 건 없었다. 몸에 안 좋은 건 몽땅 들어가 있었다.


그다음은 청수사로 향했다. 청수사는 맑은 물이 흐르는 부처님의 마음을 뜻한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청수사로 향하는 길은 멀었다. 특히 가는 길에 기념품가게들이 굉장히 많았다. 기념품 가게들을 지나 입구를 지나니 정말 전각들이 많이 있었다. 가는 길에는 엔무스비노카미라는 인연과 인연을 닿게 해준다는 신이 있는 신사가 나왔다. 우리 가이드는 통역사이지 관광가이드가 아니었기에 관광지마다 설명을 못 들어 아쉬웠는데 그렇다고 못들을 내가 아니었다. 다른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 따라다니며 몰래몰래 엿들었다.ㅋ


중간 중간에 보살상들이 많았는데 아기를 닮은 보살상도 있었고, 부처님상도 있었고, 그리고... 그 다음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것은 청수사의 세 갈래 물줄기였다. 물줄기는 사랑, 학업, 건강을 뜻한다고 한다. 줄이 굉장히 길어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탓에 먹어보지는 못했다. 사랑의 물을 먹었어야하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물맛은 아마 같을 것이다. ^^ 청수사는 굉장히 넓었고 산속에 있는 곳이라 풍경이 아름다웠다.


청수사에는 부처님의 발자국이 찍힌 돌이 있다는데 그 것을 못 보고와서 또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처음 정해진 시간이 1시까지였는데 올라가는 길에 함영미간사님이 1시 30분으로 늘였다는데, 나는 전달을 받지 못한 다른 선생님 두 분과 함께 일찍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길에 있었던 유명한 일본 떡집에서 떡을 못 샀다는 것도 아쉽다. 그래도 구경 잘하고 점식식사를 위해 이동했다.


점심식사는 뷔페를 예약해 놓으셨다고 하셨다. 중국집처럼 생긴 음식점이었는데 한국음식이 정말 많았다. 알고 보니 주인이 한국 사람이었다. 주인이 정말 친절했고, 오랜만에 먹는 김치를 정말 많이 먹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쿄토의 나라였다. 나라공원을 따라 동대사로 들어가는 길에는 사슴들이 많았다. 다가가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슴들을 보며 들판에 뛰어놀아야 행복할텐데 정체성을 잃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슴스럽지 못했지만 덕분에 사슴들과 다정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슴들은 자판에서 파는 과자를 사는 사람을 귀신 같이 알고 달라붙어 과자를 얻어내고 있었다. 광주 해령선생님도 과자를 샀다가 많은 사슴들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바람에 기겁을 하며 과자를 바닥에 내팽개쳤었다.


동대사는 정말 웅장했는데 일본사찰은 크고, 화려한 것 같았다. 동대사앞에 들어서며 향도 피웠다. 안으로 들어가니 기둥하나에 구멍이 뚫린 곳이 있었다. 그 때는 몰랐는데 그 곳을 통과하면 1년 액운을 막아준다고 한다. 부천에 권소연선생님이 체험해 보셨는데 왠만한 남자도 옆으로 들어가면 통과할 수 있었다.


동대사를 구경하고 다시 오사카 시내로 왔다. 마지막 날이었기에 신시이바시, 도톰보리, 소고백화점등 많은 곳을 구경했다. 한 접시에 130엔 한다는 제일 유명한 초밥집에서 초밥도 먹었다. 시내 중심에 있던 운하도 보았는데 물이 검정이었다. 살아있는 물이라곤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이었는데 생각 외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아마 독한 약품을 썼을 것이다. ^^


마지막 날을 신나게 보내고 숙소로 돌아와 파티를 했다. 마지막 밤을 뜻 깊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조 별로 사온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선생님들의 재치에 배꼽 터지게 웃으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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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현 2009.01.07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수에 참여해 열심히 배우며 생각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연수 및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

  2. 행복님 2011.01.15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년 1월15일 2차 연수 잘 다녀 오셔서
    꿈나무들의 미래를 위한 열린 대안 교육이 되도록 기대 합니다.
    행복 합니다.---중국 중산에서.

7월 30일 - 도심 속 신카나오카 센터보육원과 오사카보육연구소

 


신카나오카센터보육원은 도시 중심에 있다. 단층 건물로 1층에 들어서니 6세(우리나

라 나이로7세)아이들과 선생님 두 분이 일렬로 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부원장님께서

우리를 마중 나오셨고, 함께 보육원을 둘러보며 안내해주셨다.


신카나오카보육원은 건물 가운데에 큰 홀이 있고, 둘레로는 각 반과 식당이 있었다. 이 홀에서는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는 놀이기구들이 구석에 많이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아이들이 대나무타기를 하고 있었는데, 건물 안에서 대나무타기를 정말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감탄했다. 대나무 타기는 민속놀이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하는데 행사 때에나 볼 수 있었고,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대나무를 타고 경사진 평균대 같은 것을 오르는 동작을 순서대로 줄을 지어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실내기구 대신 진짜 나무를 타던 구루미보육원 아이들이 더 나무도 잘 타고 나무도 잘 느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잠시 후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홀 바로 옆에 있었고 식당, 조리실이 모두 오픈 되어 있었다. 일본의 보통어린이집에서는 조리실을 오픈하지 않는다며 자부심을 느끼고 계셨다. 조리실 벽면에는 조리사선생님들 사진과 이름과 식단이 붙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식단을 보며 오늘 요리가 무엇인지 알고, 글자공부도 자연스럽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그날 요리는 전시를 해두고 있었다. 학부모님들이 아이를 데리러 오시면 아이가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도록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교사실 앞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벽면책꽂이에는 동화책이 있었고 편하게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책상과 책이 배치되어 있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수업하러 가시고 선생님 한 분이 계셨는데 간호사선생님이라고 하셨다. 신카나오카보육원에는 43명의 보육사와(남자선생님 4분포함, 파트타임선생님까지) 간호사 선생님 한분이 계신다고 하였다.


눈여겨 볼 것은 하루의 일정이 적혀져 있는 일지와 보육사출근기록부였다. 하루의 일정을 적는 노트에는 몇 시부터 어떤 활동을 하는지, 어떤 아이가 무슨 이유로 결석을 하였는지, 하루일정에 관하여 아주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출근하면 선생님들은 이것을 참고하여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였다. 또한 선생님이 몇 시부터 출근하여 몇 시까지 일을 하였는지 출근일지에 적는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루에 선생님들이 몇 시간 근무하였는지 정확하게 기록을 남기고, 특히 파트타임선생님들이 많으셔서 출근일지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파트타임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이름을 알 수 있게 이름표도 달고 다니신다고 하셨다. 벽면에 선생님들의 이름표도 쭉 걸려있었다. 


도시 속에 있는 보육원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흔히 보는 일반 유치원과 흡사했다. 보육원을 앞마당에는 넓은 놀이터가 있었고, 여기에도 구루미보육원처럼 흙산도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흙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옷이 더렵혀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뿌려가며 진흙놀이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삽을 들고 흙을 파고 있었고 옷은  진흙투성이였다. 흙 놀이는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놀이이기에 참 부러웠다. 나도 흙산 같고 싶다. 정말정말^^

그리고 놀이터에는 정자처럼 쉴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그늘 막과, 흙 놀이 후에 발을 씻을 수 있는 공간, 바깥놀이에 쓰이는 놀이기구들이 보관함에 엄청 많았다.


연령별로 반이 이루어지는데 반마다 수돗가와 화장실이 있었다. 일본의 더운 날씨 때문에 화장실 또한 마주보게 문이 뚫려 있어 바람이 슝슝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화장실에 특이하게 생긴 큰 컵이 있었는데 그건 요강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요강처럼 생긴것에 손잡이가 달린 것이다. 어린 반을 둘러보다 요강을 쓰고 있는 아이를 보았는데 정말 귀여웠다.


연령별로 반을 둘러보는데 중간 중간에 물놀이 시설이 있었다. 어린 아기들은 베란다 밖에 돗자리를 깔아 놓고 한명이 한 개 욕조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3명을 선생님 한분이 돌보신다고 하셨고, 큰 연령은 조금 더 많이 맡지만 10명을 넘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2살~4살(우리나라 나이로 3살~5살)은 1층 풀장에서 물놀이를 하는데 2시간씩 교대로 한다고 하셨다. 그 날 아이 몸 상태에 따라 물에 들어갈지 물 밖에서 놀지는 정한다고 한다. 풀장 옆 공간에서는 남자선생님과 어린 연령아이들이 물감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손에 물감을 묻혀 마구마구 손바닥 찍기를 신나게 하고 있었다. 옷과 온몸에 물감이 묻어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한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상에도 풀장이 있었다. 우리나라 나이로 6살~7살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데 영법 위주의 수업이 아닌 자유놀이로 물놀이를 한다고 하였다. 마침 7세반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과 함께 물 속에서 뛰고, 잠수하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풀장 앞에는 물놀이놀이기구들이 엄청 많았다.


보육원을 다 둘러보고 1층으로 돌아와 주문했던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곤 원장님께서 보육원의 역사와 교육방침, 목적등 보육원전단지를 보면서 설명을 해주시는 시간을 가졌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신카나오카 보육원은?

29년된 보육원으로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하고자하는 보호자들의 희망 있어 기부금으로 설립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의 재산이라는 의식이 있으며 답례로 실천집을 만들고 있다.

1층 건물로 넓은 마당에 흙 놀이와 물놀이 시설이 있으며 옥상에도 수영시설이 배치되어있다.

공립운영체계로 보조금이 나온다. 3살 이상은 천엔씩 보조금을 받고 보조금음 물 값, 건강검사(풀장의 오줌검사, 해중검사), 온돌비용으로 쓰인다.


교사와 원아

원장, 부원장, 연령마다 주임보육사가 있으며 총 43명의 보육사(파트타임보육사까지, 남자보육사 4명)와 간호사 1명이 있다.

원아 수138명으로 0세는 아이3명에 교사 1명으로 연령마다 다르다.

단임제로 반마다보조교사가 있고, 어린 연령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책임보육사가 있으며 보육사는 하루 8시간 15분 동안 일한다.

한 달에 한번 대표자회의가 있고, 리다연수, 신입연수등 오사카보육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연수에 참가한다.


보육원의 기본 방침

누구라도 안심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고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한다.

어느 자식도 건강하고 늠름하고 건전하게 키울 수 있도록 한다.

보육자가 건강하고 생기 있게 일에 임 할 수 있도록 한다.


보육의 목적

집단 보육을 통해서 어린이들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모든 능력과 풍부한 인격 형성을 위하여

목적의식이나 움직임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보육활동에 참여하고 ,조직적으로 보호자와 같이 보육 내용을 만들어 나간다.


보육 목표

잘 먹고,잘 놀고, 건강하고 영리한 어린이

왜 그런가 라고 잘 생각하고 의욕적으로 잘 노는 어린이

친구들을 중요시 하고 친구들과 협력해서 행동하는 어린이

풍부한 감성과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갖는 어린이


보육 내용

태어나서 취학 전까지의 발달에 맞는 연령별 교육(물과 해를 친구로 해서

생기 있는 힘을 키우는 보육)

풍족한 급식 내용(특별 식재, 이유식, 알레르기 식)

계절이랑 연령에 맞는 쿠킹 교육

지역 어린이 육성 지원 활동. 자유분방한 코스별 입단 체험. 육아 상담 등 장애아 보육


연중행사

4월 입원식, 진급식, 수업참관날

5월 어린이날

6월 소풍, 그림 전, 급식시식(부모가 먹어봄), 강연회, 간담회

7월 풀장오픈, 버드나무행사(소원), 합숙보육(5살), 지역축제

8월 여름축제(부모중심)

9월 경노의 날, 4살 합숙보육

10월 운동회, 버스소풍

11월 회화 전, 리듬참관, 인형극관람, 지역축제

12월 크리스마스, 요리수업, 떡 찧는 날

1월 인공스키(5살), 부스럼

2월 발표

3월 인형극, 회화 전, 졸업식


어린이들의 하루

7:30    등원-자유롭게 놀기

9:00    간식(유아)  . 정돈  아침 조례. 걸레질 설정보육

11:30  급식 

12:30  자유 시간 발 씻기 

13:00  낮잠

15:00  간식, 자유 시간

17:00  퇴원

18:30  연장보육(희망자)유료

19:15   보육종료 *토요일은 18:30 종료


급식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계절에 맞는 안전한 음식을 제공한다.

0세~이유식부터 알레르기식까지 관리한다.

조리실이 오픈 되어 있고, 그날의 식단과 음식을 부모들이 알기 쉽게 전시한다.


연계활동

<키워가는 회>라는 오사카보육연구소에서 만든 보호자모임이 있다.

지역에서 신카나오카 센터보육원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무지개 클럽’을 만들어 지역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의 장애아교육도 한다.

8월은 전국에 공동연구회가 있다.(부모, 교사, 연구자)


원장님과 질의 응답시간도 가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에 화장실이 급해 나왔었는데 아이들이 봉에 끈이 달린 것을 들고 지겨워하며 누워서 뒹굴고 있었는데 우리가 나오면 무엇인가를 보여 주려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이 아팠다. “이 아이들도 보여주는 교육을 하여야만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것에 익숙한 아이들일까? 꼭 우리에게 공연을 해 주지 않아도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가 워낙 멀리서 왔기에 그런 공연을 해주는 거라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2곡이나 부르고 CD반주에 맞추어 그 봉을 들고 율동도 하였다. 공연을 잘 보고 아이들과 단체사진을 찍은 뒤 어린이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오사카보육연구소로 이동했다.


오사카연구소에서는 사무국장님께서 회의실에서 설명을 해주셨고, 실무조직으로는 사무국장님 외에 2명이 있다고 하셨다.

연구소는 1979에 기부금으로 세워진 곳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어린이집에서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를 하는 곳이다. 연구는 회원과 연구자들이 하며 연구한 것을 책으로 내고, 아이들 발달 특성에 맞는 놀이기구도 개발한다. 놀이기구는 소재별로 다양했다. 그리고 상담활동과 보육사들의 연수활동을 중심으로 일을 하고 계시다고 하셨다.

매년 4월~6월에는 영역별, 연령별로 연수강좌를 진행하는데, 보육원교사들이 필요한 강의를 선택해 듣는다고 한다. 연수강좌는 크게 A~D로 나누는데 세부적으로 강좌가 아주 많았다. A는 발달과 교육내용, 책 출판 B는 보육제도와 정책 C는 장애아와 교육 D는 아동기의 생활과 교육이다.


일본보육원 두 곳을 견학하면서 달랑 두 곳을 보고 단정 지을 수 있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일본문화가 한국문화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았다. 한국교육은 많이 퇴색되어 상업적으로 변해있어 교육보다는 돈벌이에 급급해 한다. 이것저것에 되지도 않는 이름들을 붙여 별별교육들이 있고, 서비스의 형태로 많은 것을 붙여 유혹한다.

예를 들면 태권도 학원을 다니면 아침 등·하교를 시켜준다든지 미술학원을 다니면 영·수학 학습지공부를 해준다든지 하는 것이다. 유치원에서는 우리는 한자공부도 한다, 가베도 한다, 외국인선생님이 오신다등등 하나라도 더 많은 교육을 해 부모들을 끌어 모은다. 부모는 어린이집에만 보내면 모두 알아서 다 해준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전부가 이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교육이 상업적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본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도 유치원부터 교육열이 치열해 공부를 많이 시키지만 기본적으로 한국과 다름 점은 부모 참여가 활발하였고, 이것을 부모들이 당연시 여긴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이 등·하원을 부모들이 시킨다는 점, 그리고 직장에서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린이집을 둘러보면서 아이들의 사물함 상자, 이불, 걸레, 수건 등 모두 부모 손으로 만든 것이 많았는데, 그것을 부모가 만들어 주는 것을 그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번 연수를 다녀오면서 이 연수가 헛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여러 곳을 둘러보며 좋은 것을 느끼고, 배운 것을 우리 아기스포츠단은 이렇지 않은데, 우리는 흙산도 없는데라며 없는 여건들을 실망하며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기스포츠단에 맞게 우리의 방식으로 보충하고, 실행한다면 그 것이 내가 연수를 다녀온 것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견학이 끝나고 카이유칸과 유니버셜스튜디오를 가다.

6시 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어제 가기로 정해 놓은 일본 대형수족관인 카이유칸으로 갔다. 카이유칸은 정말 어지러웠다. 유리가 돋보기처럼 확대되어 보이는데 눈이 빙글빙글 돌았었다. 63빌딩수족관에도 못 가보았기에 내 머릿속에 좋다, 별로다의 비교대상이 없었지만 일단 수족관에 있는 생물들이 엄청 불쌍하게 느껴졌었다.


수족관 옆에는 선착장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배를 타면 유니버셜스튜디오에 10분만에 간다고 했다. 많이 늦은 시간이라 입장권은 사지 않고 입구만 구경하기로 하고 배를 탔다. 배는 유람선 같았는데 그 곳 풍경이 정말 좋았다. 선생님들 모두 사진 찍기 놀이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지어진다.


그렇게 유니버셜스튜디오에가서 밥을 먹고 사진을 엄청 많이 찍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엄청 고생했다. 간신히 표를 사 탔는데 선생님 한분이 “내려요~”하는 말에 모두 뒤 따라 내려 출구 밖으로 나왔더니 한 전거장 앞에 내린 것이었다. 통역사분께 전화해 지하철 직원을 바꿔주었다. 한참동안 실랑이 끝에 직원이 주는 종이를 들고 다시 공짜로 지하철을 타고 간사이역으로 올 수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지금 가장 큰 추억으로 남아있다. 일본지하철은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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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 구루미보육원 견학


일본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구루미보육원으로 출발했다. 구루미 보육원은 시 외각에 위치하고 있어 한 시간 가량 버스로 이동했다. 가는 길 창밖풍경을 유심히 관찰해보았다. 일본은 영어간판보다는 자국어 간판이 많았고, 우리나라는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베란다 창문이 대부분 하나로만 되어 있었다. 나중에 가이드분이 알려줬는데, 일본은 덥고, 높은 습도로 바람이 잘 들게 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하였다.


10시쯤 한적한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구루미보육원의 부원장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부원장님을 따라 가면서 우리들은 논이 넓게 펼쳐지고, 시골집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좋은 집들과 시골풍경에 도취되어 사진을 찍으며 이동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곳은 ‘학동’이라고 부르는 초등학생들이 수업하는 건물이 있었고, 그 뒤에 보육원이 위치하고 있었다. 넓은 앞마당 앞에 구루미보육원의 원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곳곳을 돌아보며 원장님께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학동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30명 정도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이었다. 내가 갔을 때에는  방학중이였고, 방학기간에는 대게 오후에 아이들이 와서 풀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학동에는 남자보육사들이 많이 보였고 우리들이 지나가니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원장님께서는 보육원 앞마당부터 설명해 주셨다. 앞마당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사용되는데 특이하게 생긴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대나무를 타고 오르는 기구, 나무 미끄럼틀과 또 다른 놀이기구도 있었다. 이처럼 나무로 만들어진 놀이기구는 모두 부모의 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학부모모임을 통해서 계획한 것을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 모여 만든다고 하였다.


뒤편에는 큰 나무는 아니었지만 어른 키보다 조금 큰 나무가 있었는데 10년 된 그 나무는 아이들이 타고 놀 수 있도록 심은 나무라고 하였다. 나무 자체가 단단하여 아이들이 아무리 타고 매달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하였다.


앞마당 조금 걸어가니 텃밭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7세 아이들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였다. 플라스틱 통에 거름을 만들고 많은 양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직접 키우면서 수확도 해보고 그 것으로 요리도 해 먹는다고 한다.


그 옆으로는 경사가 제법 있는 비탈길이 있었고, 그 뒤로는 산이었다. 그 비탈길은 잔디로 되어있었고, 비탈길 꼭대기에는 야외용 테이블과 벤치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맨발로 활동을 하며 연령마다 썰매도 타고 뛰고, 구르며 놀고, 벤치에서는 쉬기도 하고 밥이나 간심을 먹기도 한다고 하였다. 아이들의 발달에 큰 도움을 주는 곳으로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구루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 하였다. 벌레가 많은 여름에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육원건물 앞에는 풀장이 3개가 있었다. 하나는 30년 된 풀장으로 아주 작은 것이었다.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꺼내 놓으셨다고 하였다. 이 풀장은 0세~1세(우리 나이 1~2살)아이들이 사용하였고, 아이들이 소변을 해도 물을 금방 갈 수 있게끔 작게 만들었다고 하였다.


두 번째 풀장은 조금 더 컸는데, 이 곳은 2살(우리 나이 3살)아이들이 사용하고 제일 큰 풀장은 3살(우리 나이 4살)부터 큰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조립식 풀장이었다. 그리고 물은 일주일에 한 번씩 교체한다고 하였다.


야외 설명을 마친 뒤 건물로 들어갔다. 구루미 보육원은 2층 건물이었고, 1층부터 설명해 주셨다. 국내산 나무만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바닥에도 숯을 깔아 좋은 공기가 올라와 아이들의 건강에 이롭게 하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벽은 일본 한지로 자연 풀을 이용하였고 가장 친환경적인 건물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무 건물이지만 방화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1층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2층에는 선생님 교사실과 자료실로 아이들과 미리 약속해 절대 올라오지 않는다고 한다. 1층에는 연령마다 교실이 있었는데, 모두 오픈 되어 있었다.


2층 우리가 모인 곳은 회의실로 대게 손님들이 오면 사용한다고 하였다. 소지품을 다 내려놓고, 신기하게 생긴 의자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이 의자는 의자도 되고 탁자도 되고, 뒤집으면 높은 의자 또 뒤집으면 낮은 의자가 되는 다용도 의자였다. 갖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생기게 만드는 나무의자였다.


1층에는 넓은 홀이 있었다. 우리 체육실보다 훨씬 넓은 곳이었다. 홀 한쪽 벽면으로 둘러앉았다. 원장님께서는  아이들과 함께 구루미보육원에서 이루어지는 리듬활동 수업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체험하게 해주실 거라 설명하신 뒤 피아노 치셨다.


피아노 음악이 들리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의자를 가지고 모여 앉았다. 선생님이 오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우리들과 인사시켜 주시는데 아이들이 연령별로 줄을 맞추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너무나 잘 준비하는 모습에 사실 깜짝 놀랐다. 심하게 연습시킨 건 아닐까하는 의혹(?)이 생겼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고 선생님들은 아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셨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교육하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와 율동을 하는데 자세히 보니 선생님 두 분은 유독 한 아이씩 만 보고 계셨다. 그 아이가 장애 아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되게도 하지 않으셨다.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대답한 선생님들이라 생각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아이들이 연령별로 나왔다. 손바닥을 마주 붙이고 매우 빠르게 달리기도 하고 손, 발을 땅에 붙이고 기어가기도 하고 어린연령은 선생님과 1대 1로 아이들의 몸을 풀어주고 정말 많은 동작들이 있었다. 동작을 할 때마다 선생님들께서는 정말 열심히 하셨는데 그 모습이 정말 인상이 깊었고, 정말 체력이 좋으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장애 아이는 정상아이보다 활동이 늦은데,  선생님 한분은 앞에서 응원하고 한분은 뒤에서 응원하면서 아이를 이끌어 주셨다.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박수치며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여러 동작들을 보여주셨는데 음악이 빨라지면 더 빨리 동작을 하고, 느려지면 뒤로 동작을 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기 차례와 동작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이렇게 10시 30분이 되면 매일 리듬활동을 한다고 하였다. 리듬 활동을 1시간 30분 정도 하고서는 어린연령 순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 다른 활동을 하러 갔다.


리듬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어깨와 척추, 발과 발가락을 차는 것, 그리고 힘주는 동작을 하면서 아이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귀로 듣고 움직이는 것과 아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다. 원장님의 설명으로 아이들이 하였던 동작을 우리도 체험해 보았다.


다시 의자를 들고 다시 2층 회의실로 갔더니, 회의실에는 점심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구루미보육원에서 마련해 준 음식으로 정말 먹음직스럽게 보였고 채소들 색깔이 알록달록 예뻤다.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음식은 조리사분이 계시고 방학 때에는 지금은 대학생이 된 구루미를 졸업한 아이들이 와서 무료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한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원장님께서 구루미보육원에 대하여 설명하는 시간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38년 전에 세워진 구루미보육원은 처음에는 0세 보육원을 목적으로 시작되었고 28년 전에는 시내에 있는 시청 옆에 있다가 자연 속에서 교육하고 싶어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직원과 부모가 함께 공동육아를 하는데, 원장님선생님도 처음에는 부모입장에서 아이들 보내다가 나중에 교사가 되셨다고 한다.


구루미는 무인가 보육원으로 자립적으로 세워졌다. 시골마을이라 아이들이 마을에 많이 없다고 시에서 인가를 안 줘서 정부 보조금을 못 받고 있다. 구루미를 다니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보조금이 안 나오기 때문에 못 보내는 부모님들도 많이 계시다고 하셨다. 아이들의 한 달 교육비는 부모 소득을 기준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아이마다 다르다고 하였다.


부모와 공동육아를 하며 장애아 통합교육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26명의 아이들이 다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부모가 등·하원을 시켜줘야 하는데 시골이라 거리상의 문제 또한 크다고 하였다.


아이 2명~3명 정도를 교사 한명이 맡아서 교육하는데 연령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어린연령일 수록 적게 맡고 높은 연령일수록 많이 맡고 있다. 회의실을 제외하고는 건물 내에 에어컨이 없다. 아이들은 자연바람 그대로 생활을 하는데 그 이유는 요즘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일사병으로 죽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더울 때는 피부가 확장하고 추울 때는 피부가 수축하면서 환경에 잘 견딜 수 있는 아이로 키워 건강하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그리고 건강한 어른으로 키움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였다.


구루미보육원에서 리듬활동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림그리기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림그리기는 주제를 주고 여러 종류의 재료를 제공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주제를 전혀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이들 발달 단계를 놓고 보면, 작은 종이는 아이가 그리기에 불편하기 때문에 4절지 크기의 종이를 주는데, 아이가 그리고 싶은 만큼 그리고 그리는 도구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그린다고 한다. 심지어 많게는 하루에 40~50장을 그리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에 아이의 내면에 있는 것이 표현 되는데 그림상태, 색, 두께를 보면서 교사회의 때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그림을 자료로 부모와 상담을 하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연령별로 그림그리기의 발달도 다르고, 오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하셨다. 연령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한살-한살이 지나면 그림 형태가 바뀜, 자기에 대한 고집이 생기는 시기, 말을 안 듣는 시기

두 살-내가 할거야, 싫어 등의 고집이 나옴, 두발로 뛰는 상태가 됨, 말이 됨

세살-동그라미를 그림, 집단보육의 필요성이 생김, 엄마만으로 모자람, 탐구심이 많은 왕성한 사기

네 살-동체가 생김, 머리·몸·다리를 그림. 어제·오늘·내일을 앎, 제제심이 생김, 룰이 있는 놀이가 재있어짐

다섯 살-땅과 하늘을 구분함, 지평선이 나옴

여섯 살- 생각·느낌·탐험 한 것을 그리는 시기

초등학교 가기 전-일본종이를 주고 물감으로 색칠하게 한다.


교육과정 중에는 걸레를 사용하는 교육도 하는데, 이는 스스로 함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일의 해낼 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실과 바늘의 사용도 가르친다.


구루미의 교육은 부모와 협력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야채를 먹는 식습관, 리듬이 있는 생활(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을 부모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활동이 있다. 입소 전에 구루미의 활동을 체험해 보고 글자나 영어와 같은 인위적인 조기 교육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전에 모두 알린다고 한다. 그리고 교육비만으로 충당하기 힘들기에 특산물을 많이 파는 수익사업도 많이 한다고 하였다.


교사의 채용은 엄격하며, 기본적인 자격이 있어야하고 채용 시에 리듬활동을 해보고, 밥도 먹어본다고 한다. 교사가 편식이 있으면 채용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많은 공부를 하도록 지원하고 특히 자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공부를 하도록 권장한다고 하였다.

제일 기억에 남은 것은 교사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서 아이를 대상으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가? 저절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굉장히 열심히 하는 모습도 감동이었다. 우리는 보통 아이들을 돌본다고 수업 활동에는 참여 안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구루미 선생님들은 정말 열심히 참여 하셨다. 윗옷을 왜 바지에 넣고 바지를 저렇게 잡아 올렸지? 생각했었는데 활동에 방해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배우고 또한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층을 둘러 볼 때는 깜짝 놀랄만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식사시간에 어린 아이들이 손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보통은 더럽다고 수저로 먹게끔 하는데 참 의외였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가 스스로 먹을 수 있게 하고 오감을 느낄수록 하기 위해서” 라고 하였다. 그리고 장애 아이들을 특별히 배려하던 선생님들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구루미를 보면서 우리 아기스포츠단이 지향하는 교육이 이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환경도 이런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흙산에서 진흙놀이 하는 아이들, 물놀이하는 아이들, 자연에서 함께 크는 아이들 말이다. 우리 마산Y는 구루미 만큼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주변 마을 곳곳을 잘 활용하기는 하지만........구루미에서 배울 점들,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 실정에 맞게 잘 응용한다면 구루미보다 더 나은 교육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다짐도 해보았다.

오후 4시쯤, 구루미 견학을 마치고 고베로 갔다. 모둠별로 흩어져 구경을 하고 우리선생님들 선물도 샀다. 혼자만 좋은데 오고 미안한 마음을 물질로~^^


저녁에는 너무 피곤하여 숙소가 있는 동네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우동집에 들어가 우동과 소면소반, 돈까스, 카레라이스등 5명이서 6인분을 시켜 먹었다. 자동판매기에서 주문표를 뽑아야 되는데 정말 고생했었다. 맛나게 저녁을 먹고 그날도 편의점에 들렀다. 왜? 맥주~사야했기에 말이다. 한 사람당 한 캔씩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10시에 평가회를 가졌다. 모두 비슷한 느낌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역시 말씀 잘하시는 Y선생님들이셨다. 밖에 나가면 잠을 잘 못 이루는 나였지만 정말 피곤했는지 엎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잤다.

 

구루미 보육원 http://kosodate-kurum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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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 오사카성에서 비에 쫄딱 젖다.

 

드디어 일본으로 가는 날이 밝았다. 7시 30분까지 준비를 마쳐야 했기에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치고 일어나니 아침 6시였다. 씻고, 옷 갈아입고, 다함께 아침식사를 하러 한옥체험관 안에 있는 한정식 집을 갔다. 1인당 만원짜리 식사라는데 한상에 4명이서 먹는데 나물4가지, 조기구이 2마리, 계란찜, 시레기국, 밥이 전부였다. 원래 아침식사를 안하는 나였기에 괜찮았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불만이 많았었다. 그렇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숙소마당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뒤 차를 가져오신 원주 정해연생님 차를 같이 타고 8시에 김해공항으로 출발했다.


8시 40분경에 공항에 도착! 탑승수속을 하고 면세점에서 미리 사놓았던 물건을 찾고 비행기를 탔다. 내 자리 번호는 56H였다. 제발제발 창가자리기를 기도했는데 세상에~ 정말 창가자리였다. 다른 선생님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자리에 앉는데 정말 뿌듯했다. 처음 타는 비행기였기에...^^역시 하나님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주시는 것 같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두근두근 가슴이 뛰는데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웃겼다. 촌뇬허은미^^


12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1시 15분에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기념촬영은 빼 먹지 않았다. 통역 선생님이 기다리기로 했다는데 보이지 않았다. 연맹함영미간사님께서 전화하신다며 사라지시고 바로 통역 선생님이 오셨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간사님이 오셨고 예상시간보다 늦게 버스가 출발하였다.


일본 도착 후에 첫 일정은 ‘오사카 성’ 방문이었다. 한 시간쯤 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오사카성이 보였다. 우산과 카메라를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성까지 걸어가는 길이 여기가 정말 일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선생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걸어가는데 한두 방울씩 비가 떨어졌다. 우산을 켜고 카메라가 젖을세라 품안에 꼭 앉고 걸었다. 우산을 쓰고 조금 걸었는데 하늘에서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 뻥~하고 뚫린 것처럼 내렸다. 그 중에 부천선생님 두 분은 비옷을 꺼내 입으시는데 정말 부러웠다. 역시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은 달랐다. 철저한 준비성.


비 덕분에 머리와 어깨 빼고 다 젖었고, 가방은 안 젖게 하려고 가슴에 품고 다녔다. 그렇게 간신히 오사카 성에 도착해서 성을 구경했다. 꼭대기에서부터 한층 씩 내려오며 사진도 찍고, 성안에 설치되어 있던 성모양의 도장도 찍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려고 24개 찍으려고 했는데 17개뿐이 못 찍었다. 그나마 그 것도 사람이 많이 없을 때였는데 조금 부끄러웠다.


5시까지 성을 구경하고 나와 오사카시내인 도톰보리로 향했다. 그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6시 40분까지 모이기로 했다. 나는 3모둠이었다. 원주선생님 두 분과 여수와 천안선생님, 나까지 5명이 한 모둠이었다.


저녁은 일본 된장라면을 먹기로 했다. 메뉴판이 사진으로 잘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이거 이거요” 라며 손가락질로 주문할 수 있었다. 진짜 맛있어 보였는데 어찌나 짜던지 정말 간장에 라면 말아 먹는 기분이었다. 무진장 배가 고팠기에 먹을 수 있었다. 김치는 150엔이었는데 두 접시나 주문해서 먹었다. 그렇게 라면을 먹고 가게 앞에서 기념촬영도하고 시내를 구경했다. 일본에 대해 공부를 하고 온 사람도 없었고 일본여행경험이 있는 분이 안계셨기에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는 도톰보리 입구 주위만 맴돌았었다.


그리고 신발가게에도 갔다. 비 때문에 신발이 모두 젖었었는데 천안선생님이 여유분의 신발을 준비 못하셨다 하셔서 신발을 구입했다. 따라간 원주선생님도 예쁘고 싼 신을 구입하셨고 나는 친구 아기에게 줄 귀여운 노란신발을 구입했다. 그리곤 100엔 샵에 가서 일본은 눈썹칼이 유명하대서 하나사고 유명하다는 다꼬야끼와 편의점에서 야식으로 먹을 간식과 맥주를 샀다. 우리 모둠은 다른 모둠들의 부러움을 사며 밤에 시원하게 맥주 한잔을 할 수 있었다. 맥주를 찾아오신 다른 모둠 선생님들과 함께 먹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나였지만 한 캔 거뜬하게 마시고 정말 내 집 마냥 깊이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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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 설레임과 기다림으로 보낸 하루

 

 

일본연수 가기 하루 전날. 김해에서 다함께 모였다. 서로 얼굴도 익히고, 역할도 나누면서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무거운 짐을 들고 어떻게 갈지 고민이었는데 연맹에 함영미간사와 의논 할 것이 있다는 부장님 덕분에 김해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ㅋㅋ


솔직히 아침부터 출발 준비를 끝내놓고 하루 종일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완전 들뜬 마음으로 5시 40분에 김해 도착! 약속시간은 6시 20분인지라 참가자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하나 둘씩 모이고 다음날 공항으로 바로 오는 3명을 제외하고 19명이 다 모였다. 방3개와 거실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다하여 내짐은 제일 끝 방에 놓아두었다.


모두 짐을 놓고 저녁식사를 위해 나갔다. 김해 YMCA 사무총장께서 오셔서 식사를 안내해 주셨다. 주문이 삼계탕만 된다하여 삼계탕을 먹는데 에어컨 바람이랑 마주치는 곳에 않아 정말 추웠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다시 숙소로 갔다. 연맹의 함영미간사님 진행으로 다 함께 모여 앉았는데, 우리부장님과 김해총장님께서 맛난 간식거리(맥주, 수박)을 사주시고 인사 후에 가셨다.


우리가 하루 묵은 숙소는 한옥체험관이란 곳이었다. 김해YMCA근처에 있는 곳으로 고전과 현대식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 했다. 한옥이라 너무 좋다는 사람들과는 달리 새집 냄새가 많이 나서 전혀 한옥스럽지 못한 느낌이었다. 모기 많다고 문도 못 열게 하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자야하니 이게 무슨 한옥일까. 겉모습만 그럴 뿐이었다.


이름표를 받고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난 두 번째... 제비뽑기 잘해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ㅋㅋ 그리곤 일정 소개와 역할을 나누었다. 구리 이숙영선생님은 전체일정을, 부천 이향미 선생님은 쿠루미 보육원을 그리고 나는 오사카보육원과 연구소발표를 맡았다. ‘한살부터 여섯 살’ 책을 내가 읽었기에 오사카보육원을 한다고 했다. 맡고 보니 일이 많은 것이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기에 자부심을 가지기로 맘먹었다.^^ 그리곤 간단하게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사다주신 간식거리를 먹어야했기에... 수박이 엄청나게 많아 한통을 간신히 먹고 한통은 남겼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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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웹툽 4편입니다. 10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으로, 소정의 광고료를 지원 받습니다. 학교폭력에 예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하지 못한 효인이의 극단적 선택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웹툽 3편입니다. 10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으로, 소정의 광고료를 지원 받습니다. 학교폭력에 예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왕따의 시작...친구의 아픔을 몰랐던 죄책감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웹툽 2편입니다. 10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으로, 소정의 광고료를 지원 받습니다. 학교폭력에 예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친구에게 물바가지를 맞고도....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웹툽 1편입니다. 10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으로, 소정의 광고료를 지원 받습니다. 학교폭력에 예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이 담임교사와 잘 지내는 꿀팁-첫번째

유아교육 기간에서 아이들과 생활한지도 벌써 15년차 입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마음만은 아직 20대 같은데, 제 옆에 있는 신랑과 아이를 보면 세삼 놀라울 때가 많습니다. 유치원 생활을 하며 많은 부모님을 만..

아이를 낳았는데...행복한가요?

일과 육아에 지쳐버린 나 3년만에 글을 써봅니다. 다시 글을 써볼까 싶어 티스토리에 로그인을 하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여러 인증을 거치더군요. 티스토리 발행글을 보니 260여개....내가 언제 저렇게 많은 글들을 썼을까...저런..